“진짜 ‘밧데리 아저씨’ JB가 돌아온다”
지난주 테슬라 온라인 커뮤니티는 작은 인사 뉴스에 술렁였습니다. 테슬라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DEF-14A)를 통해 새 이사회 멤버 후보를 공개했습니다. 여기에 JB 스트라우벨 레드우드 머티리얼즈 최고경영자(CEO)의 이름이 오른 겁니다. 이 안건은 오는 5월 16일 열리는 테슬라 연례 주주총회에서 투표에 부쳐집니다.
테슬라 장기 투자자에게 스트라우벨은 친숙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최근 주주들에겐 다소 낯선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2004년 머스크 CEO와 함께 테슬라에 합류한 공동창업자이자 15년간 회사의 최고기술자(CTO)였습니다. 테슬라의 초기 모델 ‘로드스터’를 사실상 직접 설계했고, 전기차 파워트레인 및 배터리 기술 개발을 이끌었습니다. 2019년 7월 돌연 회사를 떠나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머스크와 밑바닥에서 함께 구른 동지(同志)이자, 테슬라의 2인자였습니다. 그의 재직 시기 테슬라 주가는 1400%가량(2010년 6월 상장~2019년 7월) 오릅니다. 당시 1억원을 투자했다면 15억원으로 불어난 셈입니다. 이후 테슬라 주가는 코로나 시기 한 번 더 ‘퀀텀 점프’하며 혁신 기업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운명의 만남 스트라우벨은 1975년생으로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화학과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집 지하실을 실험실 삼아 골프 카트를 조립하거나 배터리 실험을 하곤 했습니다. 고교 시절엔 과산화수소 분해 실험을 하다 폭발 사고를 냅니다. 그는 오른쪽 뺨에 40바늘을 꿰매야 했습니다.
과학 영재답게 1994년 ‘명문’ 스탠퍼드 공대에 입학했습니다. 그의 학벌과 스펙이면 초일류 글로벌 기업에 고액 연봉을 받고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꿈을 좇는 인생을 원했습니다. ‘전기로 달리는 차’가 그것이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에너지 시스템 공학을 전공하고 교내 태양광 전기자동차 연구팀에서 ‘맏형’으로 활동합니다. 특히 그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주목했습니다. 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소형 배터리를 수천 개 연결해 전기차에 장착하면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철 수준’의 중고 포르쉐를 1400달러에 사들여 배터리를 장착하고 전기차로 개조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스탠퍼드대 석사 학위를 딴 뒤 로스앤젤레스(LA)의 자동차 스타트업에 다니며 연구 활동을 이어갑니다. 2003년 가을, 그는 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네 살 연상의 젊은 사업가 머스크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에서 연이은 창업 성공으로 억만장자가 됐고, 스페이스X라는 민간 우주로켓 기업을 설립한 참이었습니다. 전기차 이야기를 꺼낸 스트라우벨에게 머스크는 큰 관심을 보였고 그 자리에서 1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만남이 ‘20년 인연’의 시작이 될 줄은 두 사람 모두 꿈에도 몰랐습니다.
연봉 9만5000달러 ‘배터리 맨’ 2004년 스트라우벨은 머스크의 권유로 ‘전기차 스타트업’ 테슬라에 합류합니다. 그는 테슬라 창업자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에게 “머스크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배터리팩을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의기투합했고 스트라우벨은 연봉 9만5000달러(약 1억2500만원)에 고용 계약서를 씁니다(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사실 이들은 모두 전기차가 좋아서 사업을 시작했을 뿐, 누구 하나 자동차 전문가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추어 동호회원들이 자동차 회사를 차린 셈입니다.
스트라우벨이 맡은 업무는 테슬라의 첫 모델인 로드스터의 파워트레인과 배터리팩 개발이었습니다. 그는 스탠퍼드 친구와 후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은 속속 ‘맏형’의 팀에 합류합니다. 어느새 그의 집 차고는 테슬라의 또 다른 연구소가 됐고 거실은 사무실처럼 쓰였습니다. 2008년에 이르러 스탠퍼드 출신 엔지니어는 40명에 달하게 됩니다. (찰스 모리스 『테슬라모터스』). 훗날 스트라우벨은 테슬라의 2인자로 부상하며 사내 최대 파벌인 ‘S대 라인’의 수장이 됩니다.
“150대 중 1대꼴로 불이 난다면…” 전기차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화재입니다. 배터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재에도 전기차 화재 사고는 잊을만하면 뉴스에 오르곤 합니다. 초창기 테슬라도 이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자동차 배터리팩을 만들려면 배터리셀을 빽빽하게 채워야 합니다. 이 때문에 셀 하나라도 과열되면 큰 폭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005년 여름, 스트라우벨은 배터리 제조사 전문가들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배터리셀의 화재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 있게 답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배터리 화재는 지극히 드문 일입니다. 배터리셀 100만개 중의 1개 꼴이에요” 당시 전문가들이 생각한 배터리는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의 소형 기기용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100만분의 1 확률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테슬라는 자동차 한 대당 약 7000개의 배터리셀을 넣을 계획이었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본 스트라우벨은 사색이 됐습니다. “150대 중 1대꼴로 불이 난다면 테슬라는 망할 겁니다” (팀 히긴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로드스터 시제품만 잘 개발해 투자금을 끌어모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던 테슬라엔 큰 위기였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이 문제를 대충 무마하고 넘어갔다가, 몇 년 뒤 자동차가 폭발해서 전기차라는 꿈 자체가 무너질 생각을 하니 아찔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의 선구자 테슬라는 즉시 로드스터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배터리 화재 태스크포스(TF)를 꾸렸습니다. 매일 실험을 거쳤고 이상적인 배터리 셀의 간격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배터리 위로 공기를 흐르게 하거나 액체 튜브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실험을 거듭할수록 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했습니다(찰스 모리스 『테슬라모터스』).
그는 배터리셀이 뜨거워지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온도에 도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배터리셀을 몇 ㎜ 간격으로 띄우고 액체를 채운 튜브 사이에 밀어 넣었습니다. 배터리팩 안은 반죽 같은 미네랄 혼합물을 넣어 독자적인 발열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배터리셀이 과열해도 에너지가 인접한 셀로 분산돼 폭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원리였습니다.
스트라우벨 팀은 연기 발생과 과열을 탐지하는 센서도 개발했습니다. 뭔가 이상 징후가 보일 경우, 동력 장치가 저절로 꺼지게 했습니다.
“당신네 차가 폭발하면 어쩔겁니까?” 전기차의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배터리입니다. 전기차가 대중화 단계에 이른 현시점에서 보면 20년 전 스트라우벨의 열관리 기술은 큰 진보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 사실을 인지한 이들은 극소수였습니다. 2차전지 기업들은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허황한 꿈의 스타트업’ 테슬라를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당시 CEO였던 마틴 에버하드는 배터리 공급을 요청하러 만난 회사 간부에게 면전에서 이런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당신들이야 별로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게 없겠지만, 우리는 달라요. 당신네 자동차가 폭발이라도 하면 우리도 소송에 휘말릴 겁니다” (팀 히긴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천하의 테슬라도 20년 전엔 이런 설움을 겪었습니다.
→ 2편에 계속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