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와타리씨, 지난번 진료 이후 별다른 이상은 없으셨어요?”
“술자리가 늘어서 체중이 좀 불었습니다.”
“이와다 간호사, 오늘 혈압과 맥박은 어떤가요?”
“맥박은 80회, 혈압은 97/148입니다.”
평범한 병원 진료 장면 같지만 의사인 노나카 후미아키 나가사키의대 낙도의료연구소 조교는 환자인 쓰와타리 도시카즈씨, 이와다 쇼고 간호사와는 버스로 1시간20분 거리에 있다.
나가사키현 고토시가 지난 1월 23일부터 시작한 이동식 원격의료 서비스 ‘모바일 클리닉’의 비대면 진료 현장이다. 고토시 외에 나가노현 이나시 등 6개 지역이 올해부터 이동식 원격의료 서비스에 들어갔다.
모바일 클리닉이 일반적인 원격의료와 다른 점은 원격의료 시설을 갖춘 차량이 간호사를 태우고 환자의 자택 근처로 찾아간다는 것이다. 간호사가 환자의 혈압과 맥박을 재고 의사가 쓰는 전문용어를 설명해준다. 의사는 전용 헤드폰으로 간호사가 짚는 청진기의 심장박동 소리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고, 정보기술(IT) 기기 사용이 서툰 데다 의사들의 전문용어를 어려워하는 고령자에게 맞춰 진화한 서비스다.
원격의료로 끝이 아니다. 처방받은 약을 드론으로 배송해 환자가 병원과 약국을 오갈 필요가 없게 하는 서비스도 계획하고 있다. 고토시는 도요타통상의 계열사인 소라이이나(‘하늘이 참 좋구나’라는 뜻)와 손잡고 드론을 활용한 의약품 배송 실용화에 나섰다.
일본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2020년 4월 한시적으로 허용한 초진 원격의료를 작년 4월 병원에, 작년 9월에는 약국까지 완전히 허용했다.
한국은 일본보다 앞선 2020년 2월부터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초진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보건복지부는 그러나 일본과 달리 재진부터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법안을 오는 6월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초진 원격의료 허용을 의사단체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원격의료 앱 사용자 대부분이 초진 환자여서 복지부의 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라 시게오 고토의사회 회장은 “일본 의사단체들도 처음엔 강하게 반발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라는 점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원격의료는 고령화와 지역 쇠퇴로 의료 체계가 붕괴할 위기를 맞은 산간·도서 지역의 구세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에는 255개의 유인도가 있고, 일본인 61만4453명(2018년)이 낙도에 거주한다. 나가사키의 섬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12만3048명으로 가고시마, 오키나와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고토시가 있는 고토열도는 나가사키에서 100㎞ 떨어진 섬이다. 제주도와도 약 180㎞ 거리로 멀지 않다. 면적은 420.1㎢다. 강화도만 한 섬에 약 5만 명의 주민이 산다.
고토열도에는 28개 의료기관에 의사 66명이 근무한다. 고토시에는 인구 238.4명당 1명의 의사가 있다. 일본 전체 평균인 267명당 1명과 나가사키현의 333명당 1명에 비해 의사가 많다. 문제는 병원과 의사가 고토시에 몰려 있다 보니 섬의 다른 지역 주민은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섬 반대편 마을 다마노우라초에서 고토시에 가려면 하루 세 편뿐인 노선버스로 80분이 걸린다.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58.6%에 달해 병원 가기를 포기한 사람이 늘어났다. 낙도일수록 고령화율은 더 높다. 일본 전체와 나가사키현의 고령화율이 각각 29.1%, 33.7%인 데 비해 고토시는 42.1%다. 고령화율이 50%를 넘는 지역도 적지 않다.
고령자들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지 못하면 만성질환이 중증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위기 상황에서 이뤄진 원격의료 완전 자유화와 이동식 원격의료 서비스의 등장은 ‘의료 난민’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에다 다카히로 나가사키의대 낙도의료연구소장은 “의사의 도시 집중은 세계적인 문제”라며 “이동식 원격의료 서비스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선진국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가사키=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