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보지 않았다면…'교향곡 신세계'는 쓸 수 없었다"

입력 2023-04-13 17:41
수정 2023-04-28 21:26
“활기차고 아름다운 작품. 미국 작곡가를 위한 강연이다.”

1893년 12월 17일 토요일자 미국 뉴욕타임스는 체코 출신의 유명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를 격찬했다. 하루 전 카네기홀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두 번에 걸쳐 초연한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접하고서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교향곡을 설명하는 것은 사진에 꽃향기를 담으려는 노력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라면서도 드보르자크의 신작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가 미국에 와서 본 것으로 무엇을 해냈는지 보라’는 것이었다.

분명하게도 드보르자크가 오선지에 써낸 것은 단순한 음표의 나열이 아니었다. 체코에서 나고 자란 이방인이 미국이라는 신세계를 발견했을 때 느낀 희열과 환희, 두려움, 충격을 녹여낸 음악적 기록이었다. “미국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교향곡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말처럼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과 활력 넘치는 대도시를 마주한 경험은 강렬한 영감을 일으키는 원천이었고, 그의 음악적 지평을 넓히는 열쇠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미국행은 옳았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9번 ‘합창’,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함께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이라 불리는 교향곡을 세상에 남겼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그렇다.

미국으로 떠나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당시 프라하 음악원 교수직에 몸담으며 음악가로서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을 해오던 터였다. 굳이 타국에서 고생하며 새로운 음악 활동을 펼칠 명분도 마땅치 않았다. 고국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드보르자크가 미국행 배에 오르기로 결정한 것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제안 때문이었다. 미국 뉴욕 국립 음악원이 내건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일단은 원장 자리를 맡아달라고 했다. 물론 브람스 이후 유럽에서 제일가는 음악가로 명성을 쌓은 드보르자크가 관심을 둘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드보르자크를 간절히 원했던 뉴욕 국립 음악원 창립자 자네트 서버는 교수 월급의 세 배가 넘는 급료와 연 4개월의 휴가, 연 10회 공연 보장 등을 제시했다. 생활고 걱정 없이 작곡 활동을 하고 후학 양성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겠다는 의미였다.

장고 끝에 제의를 수락한 드보르자크는 미국에서 교향곡 9번뿐만 아니라 첼로 협주곡의 황제라 불리는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등 클래식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쏟아내며 뉴욕 국립 음악원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이 대성공을 이룬 요인으로는 흑인 영가, 인디언 음악 등 미국 민요 정신을 담은 선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서정적 표현의 조화가 꼽힌다.

e단조 교향곡인 이 작품은 우수에 찬 첼로의 선율로 조용히 문을 연다. 갑작스러운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와 호른의 장대한 선율로 분위기 반전을 이뤄내는 1악장은 민요풍의 선율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악상으로 격렬한 인상을 남긴다. 목관악기와 현악기가 쌓아 올린 응축된 선율 위로 등장하는 트럼펫, 트롬본, 호른의 광대한 울림이 신세계를 목격했을 때 드보르자크가 느낀 충격과 놀라움, 희열을 펼쳐낸다.

느린 2악장에서는 애수에 젖은 잉글리시 호른 선율이 드보르자크의 짙은 향수를 쏟아낸다. 3악장은 날카로운 터치와 생동감 넘치는 리듬으로 춤곡 특유의 경쾌하면서도 호화로운 악상을 마음껏 드러내는 악곡이다.

비로소 마지막 악장. 저음역에서 긴 음형으로 출발한 현악기 선율이 짧고도 강한 음형으로 빠르게 변하면서 마치 거대한 형체가 눈앞으로 달려오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면 이내 금관악기가 거대한 울림을 내뿜으면서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현악기의 힘찬 선율에 금관악기의 육중한 음색이 더해지면서 만들어내는 입체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목관악기의 평화로운 진행 뒤로 내달리듯 이어지는 현악기의 격앙된 선율과 금관악기와 팀파니가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에너지에 온 감각을 집중한다면 드보르자크가 그려낸 절정의 화려함을 온전히 맛볼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