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라면이 1963년 국내 라면 시장의 문을 연 이후 라면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기까지 업계는 여러 굴곡을 거쳤다. 1989년의 ‘우지파동’같이 큰 시련도 있었지만, 대개 열정적인 연구개발로 극복했다. 스프 제조공법의 혁신이 대표적이다. 재료를 끓여 만든 엑기스를 분말화하는 과거의 열풍건조공법은 제조 과정에서 향이 날아가고 생산 효율도 좋지 않았다.
1982년 농심이 이를 보완한 진공건조공법을 개발하면서 ‘스프 혁신’이 시작됐다. 농심은 현재 스프 원재료를 200도 이상에서 직화해 나온 진액을 진공 상태에서 농축·건조하는 ‘지오드레이션(Z-CVD) 공법’을 개발해 적용 중이다.
팔도는 액상스프 선두주자다. 1983년 국내 최초로 액상스프를 사용한 ‘팔도라면 참깨’를 출시한 데 이어 1984년에는 ‘팔도 비빔면’을 선보이며 비빔라면 시장을 개척했다.
최근에는 사골·소고기·버섯 등을 우린 육수에 각종 채소와 고춧가루 등을 넣어 만든 액상스프도 나왔다. 하림의 ‘더미식 장인라면’ 등이 이런 스프를 사용한다.
컵라면의 등장도 라면사(史)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1972년 컵라면을 최초로 도입한 건 삼양식품이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궤도에 진입한 건 1982년 농심 ‘육개장사발면’이 나오면서부터다. 팔도가 사각 도시락 모양의 ‘도시락’(1986년), 뚜껑 있는 라면인 ‘왕뚜껑’(1990년) 등을 내놓으며 제품군이 다양화했다.
편의점 자체브랜드(PB)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주요 편의점은 마니아들의 다양한 요구를 초스피드로 반영해 제조사(NB)를 긴장시키고 있다. 업계 최초의 PB라면은 2006년 출시된 GS25의 ‘틈새라면’이다. GS25는 2014년 팔도·㈜오모리와 손잡고 ‘오모리김치찌개라면’을 선보여 히트시켰다.
코로나19 창궐 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건면 시장이 커지는 추세다. 2019년 ‘신라면 건면’이 출시된 걸 계기로 시장이 활성화하는 분위기다. 1969년 최초의 건면을 선보인 삼양은 건면전용 브랜드 ‘쿠티크’를 지난해 론칭했다.
굴곡 심했던 국내 라면사에서 의외로 베스트셀러 순위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부동의 1위’ 농심 신라면은 1986년 출시됐다. 짜파게티는 1984년, 안성탕면은 1983년에 나왔다.
오뚜기의 메가히트 제품 ‘진라면’은 1988년 첫선을 보였고, 한국 라면의 효시 ‘삼양라면’은 환갑이 됐다. 해마다 라면 신제품은 30~40개가 나오지만, 호기심에 한두 번 사 먹다가 결국에는 원래 먹던 친숙한 제품으로 돌아가는 소비자의 ‘회귀본능’이 강하다. 후발주자들은 프리미엄 제품을 앞세워 이런 ‘철옹성’을 두들기고 있다. 하림이 2021년 만든 ‘장인라면’은 화학조미료 대신 자연 재료를 우려낸 육수를 사용해 만들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