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나의 운전 정보, 내 것인가 아닌가

입력 2023-04-12 09:39
-주행 데이터 소유권, 분쟁의 서막이 오르다

지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자가용을 운전해 갔을 때 만들어지는 주행 데이터는 여러 가지다. 속도, 이동 경로, 주차를 돕기 위해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물, 연료 소비, 운전 습관, 타이어 마모율, 심지어 이동 중에 들었던 라디어 주파수까지 이른바 '정보' 및 '데이터'로 분류되는 것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운전자가 '운전'이라는 행위를 통해 생성된 정보인 만큼 소유권은 운전자에게 있지 않을까? 게다가 자동차라는 물건도 소유권이 운전자에게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나아가 운전자도 자신의 주행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면 소유권 매우 중요한 요소다.

소유권이 운전자에게 있다면 주행 정보를 활용하려는 사람은 운전자 허락을 받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을 이유로 주행 데이터를 허락받고 가져가는 완성차기업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동과 동시에 만들어지는 데이터를 실시간 통신으로 자동차회사 서버에 전달하고 회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구독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물론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관리하고 비밀로 취급한다고 공언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허락 없이 들여다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슬라의 개인 영상 유출이다. 테슬라 제품에 부착된 카메라가 주행 데이터 확보 차원으로 촬영한 영상을 제조사가 실시간 전달받았고 이 가운데 선정적인 장면을 직원들이 돌려 봤다. 결국 일부 소비자가 테슬라를 상대로 법원에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고 테슬라는 개인정보 취급방침을 앞세워 반박했다. '고객이 데이터 공유에 동의할 때 차가 수집한 데이터를 테슬라에 제공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해당 데이터가 개인 계정이나 차량 식별번호와 연결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개인 영상이 유출됐고 개인 계정이 차의 식별번호와 연결된 것이 논란이다. 제조사가 얼마든지 차 소유자와 개인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논의를 시작했다. 운전자 주행으로 만들어지는 데이터를 어디까지 개인 정보로 인정해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그래야 주행 데이터에 대한 제조사의 공정한 접근은 물론 소비자의 개인 정보도 관리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제아무리 유럽연합이라도 기준 확정 시점은 장담하지 못한다. 기준에 포함되는 항목을 분류하는 것부터가 거대한 장애물인 탓이다.

그리고 장애물을 반기는 곳은 자동차 제조사다. 구독서비스로 수익을 추구할 때 자칫 개인 정보 문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는데 분류부터 혼선이 생긴다니 내심 반기는 모양새다. 2030년까지 커넥티드에 기반한 구독 서비스 시장이 최대 570조원 규모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개인정보 보호가 자칫 수익 사업의 방해(?) 요소로 떠오를 수 있어서다.

실제 주행 데이터 소유권은 유럽연합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직 명확한 소유권이 규정돼 있지 않다. 결국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2월 제안한 ‘데이터 법’의 보완을 목표로 새로운 법률 제정에 나선다는 계획이지만 소유권 항목을 분류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그럼에도 주행에 따른 개인 정보의 소유권 구분은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오히려 자율주행 기업에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자율주행의 완성도가 데이터 축적에서 비롯되는 탓이다. 심지어 자율주행 지능을 개발하는 구글의 경우 여러 자동차회사와 손잡으며 확보한 주행 데이터의 소유권 여부를 명확히 규정해 달라고 입법을 요청했다. 지금처럼 개인 정보를 사용하다 혹시 모를 분쟁이 발생해 자칫 거액의 손해배상에 나설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그래서 주행 정보의 소유권 구분의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중이다. 나의 운전으로 만들어진 주행 정보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법률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때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