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제조업체들의 주가 강세가 음극재 등 다른 배터리 소재 기업들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양극재 외에 2차 전지 4대 소재로 꼽히는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수혜권에 놓인 만큼 양극재만한 평가를 기대할만하다는 분석이다.
미국 재무부가 현지시각 지난달 31일 IRA 전기차 세액공제 잠정 가이던스에 따르면 양극재, 음극재, 동박 등은 '배터리 부품'이 아닌 '핵심광물'로 분류된다. 배터리 부품은 미국 내에서 제조해야만 보조금 혜택을 받지만, 핵심광물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가공만 하면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된다.
따라서 한국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염·첨가제 업체들은 현재 공정 과정을 바꾸지 않아도 IRA 보조금 지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에코프로를 필두로 엘앤에프 등 양극재 업체들이 매서운 상승세를 보였다. '핵심광물' 분류된 음극재·전해질…"한국산 수요 늘 것"대표적인 음극재 관련주로 꼽히는 대주전자재료는 올들어 이날까지 주가가 83.8% 올랐다. 같은 기간 7.4배 오른 에코프로나 약 2배 오른 엘앤에프의 성장성엔 못미친다. 향후 주가가 추가 상승할 여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주전자재료는 IRA 수혜에 더해, 음극재 공급 차량 수도 늘어나고 있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기존의 포르쉐 타이칸 외에도 아우디 E-트론 GT, GM 상위모델 등에 음극재를 탑재할 예정이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주전자재료의 실리콘 음극재는 하이엔드 배터리를 차별화하는데 중요한 소재"라면서 "2025년까지 국내에 의미 있는 경쟁자가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긍정 전망을 내놨다.
천보도 전해질 염·첨가제가 핵심광물로 분류되면서 IRA 수혜권에 놓일 대표적인 종목이다. 특히 테슬라 등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채택하는 자동차 회사 수가 늘어가면서 전해질 수요도 동반 상승할 전망이다. 올들어 주가 상승률은 약 40% 정도 올랐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천보는 LFP 배터리 확대의 최대 수혜주"라면서 "지난해 4700톤에서 올해 1만7000톤으로 생산능력이 확대되면서 외형 성장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마찬가지로 핵심광물로 분류된 동박은 SKC의 100% 자회사인 SK넥실리스가 업계 내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은 SK넥실리스가 테슬라에 앞으로 10년간 동박을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언론 보도 후 SKC 주가는 잠깐 오르다 소폭 하락하면서 장을 마감했다. 정재헌 DB금융 연구원은 SKC에 대해 "국내외 대규모 동박 설비 투자 결과물은 2024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면서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했다.
이 밖에도 동박 제조업체로 분류되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솔루스첨단소재 등도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한 종목이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동박은 그간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은 탓에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돋보였으나, 2025년부터는 미국 내에서 중국산이 사라진다"면서 "한국 업체 글로벌 점유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분리막, '배터리 부품' 분류에도 호재인 이유는 분리막은 미국 내에서 제조·조립해야 한다. 2차 전지 4대 소재 중 유일하게 배터리 부품으로 분류된 탓이다. 미국 현지 생산이라는 이런 제약 조건은 분리막 제조업체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에겐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철중 SKIET 사장은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북미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SKIET는 폴란드 법인을 북미 진출에 활용하면서 북미 공장 착공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북미 분리막 시장은 한국 기업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면서 "SKIET 실적은 올해 하반기부터 정상화되기 시작해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IRA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지급 조건에 충족하려면 2024년부터 중국산 배터리 부품을 제외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한국 기업들의 시정 점유율도 올라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극재에서 시작된 2차 전지주 상승 랠리가 다른 소재들로 옮겨붙을 가능성도 높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양극재는 배터리에 가장 중요한 소재면서 한국이 가장 앞서있는 분야인 만큼 배터리 대장주 역할을 해왔다"라면서도 "통상 양극재주가 다 오른 뒤 다른 소재주들이 오르는 만큼, 다른 소재주들 또한 지켜볼만하다"고 했다.
배성재 기자 sh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