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제친 AI반도체…韓기업 협업의 승리"

입력 2023-04-10 17:58
수정 2023-04-18 16:33

“삼성전자, 반도체 디자인하우스 세미파이브 등과 함께 이룬 K반도체 생태계의 승리입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10일 자사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아톰이 글로벌 AI 반도체 성능 경연대회에서 미국 엔비디아와 퀄컴 제품을 제친 데 대해 이같이 밝혔다. 박 대표는 “한국은 훌륭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이 있고, 반도체 디자인하우스의 경쟁력도 강력해 AI 반도체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3년차 토종 AI 반도체 설계(팹리스) 스타트업인 리벨리온은 최근 세계 최고 권위의 AI 반도체 성능 테스트 대회인 엠엘퍼프(MLPerf)에서 이 분야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 퀄컴의 동급 반도체보다 언어처리, 이미지 분석 부문에서 1.4~3배 앞선 성적을 받았다. 2년 전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와 세미파이브가 신생 기업 리벨리온의 아톰 시제품 제작을 맡는 등 협력한 덕분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AI 반도체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처럼 두루 쓰이는 반도체와 달리 특정 분야 연산에 특화된 제품이다. 올 2월 나온 아톰은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다. 최근 주목받은 챗GPT 등 생성형 AI 서비스를 제대로 구동하기 위해서는 뒷단의 데이터센터에서 관련 연산을 재빨리 해야 한다. 아톰은 이런 곳에 쓰이는 제품이다. 박 대표는 “아톰의 에너지 효율은 언어모델 기준으로 기존 최고 제품보다 3~4배 정도 뛰어나 데이터 전력 소모량을 3분의 1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리벨리온은 2021년 12월 세계에서 처리 속도가 가장 빠른 파이낸스 AI 반도체 아이온을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적으로도 팹리스업체가 설립 후 3년도 되지 않아 최고 성능의 AI 반도체를 잇달아 공개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 회사의 최대 경쟁력은 국가대표급 개발진이다. 박 대표는 인텔, 스페이스X를 거쳐 모건스탠리에서 퀀트(계량 분석) 개발자로 일했다. 오진욱 최고기술책임자(CTO)는 IBM 왓슨연구소에서 AI 반도체 수석설계자로 근무했다.

김효은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의료 AI 기업 루닛에서 딥러닝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80여 명의 직원 중에는 세계 최대 팹리스 ARM, 애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박사급 베테랑 개발자들이 포진해 있다. 상용 제품이 나오지 않았지만 10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박 대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내년 1분기에 상용 제품을 처음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리벨리온의 반도체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엔비디아와 퀄컴 반도체 사용에 익숙한 고객사의 검증을 받고 신뢰를 얻어야 제품을 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잠재 고객사들이 먼저 연락해 왔다. 올해 KT 데이터센터에 아톰을 적용해 사용 사례도 만들 예정이다. 박 대표는 “10년 후에는 퀄컴을 인수할 수 있을 만큼 회사를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주완/이시은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