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연초에 크게 흔들리다 어렵사리 안정을 찾은 원화 가치가 최근 다시 뚝뚝 떨어지고 있다. 불과 2개월 전 1220원대로 하락했던 원·달러 환율이 어느새 100원 넘게 급등해 1320원을 넘나드는 모습이다. 고환율 장기화로 익숙해져서 그렇지, 1300원대 원·달러 환율은 우리 경제에 매우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한국 경제 위기설’이 불거진 작년 11~12월 환율 수준이 1300원대였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1300원 벽이 뚫린 때는 2002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심각한 위기국면 외에는 별로 없다.
미국 금리 인상이 끝물이라는 평가로 달러가 약세로 돌아선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원화만 ‘나홀로 약세’인 점이 걱정을 더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달러 가치(달러인덱스)는 3월 이후 2.9%(6일 기준) 하락했다. 달러가 약세면 달러 외 통화는 강세로 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원화 가치는 0.3% 상승하는 데 그쳤다. 엔(3.4%) 유로(3.3%) 등 선진경제권 통화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루피아(2.3%), 인도 루피(0.8%)보다 낮은 최하위권 상승률이다. 돌아보면 2월에도 그랬다. 2월 한 달간 원화 가치는 6.3% 급락해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7.0%)를 제외하면 세계 신흥국 중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환율 급등은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식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13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현실이 됐고, 올 경제성장률이 저성장 대명사인 일본을 밑돌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수급 측면에서도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다. 4월은 배당금 지급 시즌이라 외국투자자의 달러 환전 수요가 몰린다. 더 근본적으로는 가계와 기업 부실이 함께 임계점으로 달리고 있다. 반토막 난 상장 대기업 실적에 눈길을 뺏긴 사이에 비상장 중소기업의 실적은 반의 반토막이다. 제2 금융권을 중심으로 부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계 부실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원자재와 상품 가격을 끌어올려 민생에도 직격탄이다. 고물가 상황에서 불황이 깊어지면 마땅한 정책 수단을 찾기 어렵다. 원화 가치 급락의 경고를 결코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