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친구 성착취로 '18년형'…무죄로 뒤집힌 결정적 근거는

입력 2023-04-08 14:01
수정 2023-04-08 14:08

어린 손녀와 놀기 위해 집에 온 이웃집 여아를 강제추행하고 성폭행하려 하는 등 5년간 성 착취한 혐의로 기소된 60대에게 내려진 1심 유죄 판단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1심과 2심이 다른 결론을 내면서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A(67)씨는 지난해 4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유사성행위) 등 4가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1월 손녀와 놀기 위해 찾아온 이웃집의 B(당시 6세)양을 창고로 데리고 가 강제 추행한 혐의였다. 2018년 8월과 11∼12월, 2019년 9월 자택 또는 B양의 집 등지에서 3차례에 걸쳐 B양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2020년 1월 자택에서 B양을 상대로 유사 성행위를 한 혐의도 있었다. 휴대전화로 B양 신체를 동영상으로 촬영한 혐의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재판이 시작되자 A씨 측은 "피해 아동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10가지 근거를 들어 B양의 진술에는 충분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진술이 일관되며 핵심적인 공간적·시간적 특성을 매우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진술한 점,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인 점, 신고 경위가 자연스러운 점 등 때문이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8년의 중형을 선고하고, 피해자에게 접근 금지와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등 준수사항을 달아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렸다.

판결에 불복한 A씨가 낸 항소심에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1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20년간 전자발찌 부착 명령도 파기하고 검찰의 부착 명령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된 피해자와 A씨 손녀의 친구인 C양 간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심 재판이 끝난 뒤인 지난해 11월 C양이 사건과 관련해 묻자 B양이 'A씨가 싫어서 거짓말로 신고했다, 진짜 감옥에 갈 줄 몰랐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B양이 그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내용과 어긋났다.

재판부는 해당 언급이 기존 진술 중 일부가 다소 과장됐다는 취지로 표현했다고 볼 여지가 있고, C양이 B양에게 연락한 경위와 질문 내용에 다소간 의심스러운 사정도 엿보인다고 봤다. 그러나 B양이 해당 메시지의 작성과 전송 자체를 부인해 언급 자체를 하게 된 동기나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없게 돼 기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A씨가 아닌 제3의 인물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정 역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의문이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로 작용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는 "부적절한 성적 접촉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상담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실관계 전부가 진실하다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서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