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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서 촉발된 은행 위기 여파로 미국 일부 지역 은행은 대출 규모를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면 기업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어 경기둔화를 가속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은행 대출 태도 보수적으로 급변
6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국 댈러스연방은행이 지난달 21~29일 관할 지역 내 71개 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대출 규모를 추적하는 지수가 -18.3까지 떨어졌다. 이 지표는 대출 규모가 ‘늘었다’고 답한 비율에서 ‘줄었다’고 답한 비율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계산된다. 지수가 양수면 직전 조사보다 대출 규모가 늘어났고, 음수면 대출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대출 규모 지수는 지난해 10월 -1.4, 11월 -7.8, 올해 1월 -10.7로 석 달 연속 하락세를 지속하다가 2월(4.8)에 반짝 반등한 뒤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소비자 대출 지수가 -33.4로 낙폭이 컸고, 주거용 부동산 대출(-24.3), 상업용 부동산 대출(-20.9), 영업용 대출(-14.9)이 줄줄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댈러스연은은 일부 설문 응답자가 “SVB와 시그니처은행, 크레디트스위스 등의 파산과 몇몇 지역 은행의 신용등급 강등은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소개했다.
미 사모펀드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해당 통계를 두고 “신용 경색은 이미 시작됐다”는 해석을 내놨다. 그는 이날 발표한 노트에서 “대출 규모가 극적으로 역전되고 있다”며 SVB 파산 이후 제기해 온 경기 경착륙 가설에 무게를 실었다. 슬록은 경기 침체를 동반하지 않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의미하는 ‘노랜딩’이라는 단어를 월가에서 처음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SVB 파산 후 “미 경제가 ‘노랜딩’에서 ‘하드랜딩’으로 가고 있다”며 경기 침체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여러 차례 주장해 왔다. 영국 경제분석회사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라이언 스위트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은행 시스템의 불안정은 심각하고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올해 3분기부터 침체가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Fed “금융위기 때보다는 괜찮다”다수의 시장 전문가들이 슬록과 견해를 같이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는 CNN에 “사람들이 대출을 조금씩 줄이고 있다”며 “은행 위기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Fed의 정책 기조 변화에 대한 직접적인 요구도 나왔다. 다국적 컨설팅그룹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CNBC 인터뷰에서 “직원 수가 250명 미만인 소규모 기업부터 신용이 서서히 위축될 것”이라며 “기업 성장이 지체되며 경기가 쪼그라들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Fed가 긴축 기조를 지속할 경우 미국 경기가 “완전히 얼어붙어 얼음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반론도 있다. 대출 경색 정도가 침체로 이어질 만큼 심각하지는 않다는 주장이다. Fed 내에서도 가장 ‘매파(긴축 선호)’ 성향인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은 총재는 이날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기자들과 만나 “2007~2009년 금융위기 때보다 스트레스 정도가 낮다”며 “대출 수요는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0년물, 2개월물 국채 수익률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점을 들어 “은행 위기로 인한 시장 혼란이 상쇄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