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경기 악화와 자산시장 침체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으면서 재정 운용에 비상등이 켜졌다. 윤석열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를 선언한 상황에서 세입 부족은 재정지출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3월부터 연말까지 작년만큼 세금을 걷는다고 해도 올해 20조원의 ‘세수펑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정부가 세입 예산을 축소하고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세입 경정’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반기 세수펑크 커질 수도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세수는 54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6조원 줄었다. 주세와 종합부동산세를 제외하고 양도소득세 증권거래세 부가가치세 등 거의 모든 세수가 작년보다 감소했다. 올해 세입예산 대비 징세 실적을 뜻하는 세수 진도율은 2월 13.5%로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최저였다.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서면서 정부 목표치보다 세금이 더디게 걷히고 있는 것이다.
2월 누적 세수 부족분(약 16조원)을 감안해 3월부터 연말까지 작년만큼 세금을 걷는다고 가정하면 올해 걷히는 세금은 380조2000억원이다. 기재부가 올해 세출예산을 편성하면서 추정한 세입 전망치(400조5000억원)보다 20조원가량 부족하다. 애초 기재부는 “예상한 흐름”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하반기에 경기가 살아난다면 1분기 감소 폭을 만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하반기 세수가 크게 증가하지 않고 세수 감소 영향이 확대된다면 세입예산 대비 세수펑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주식시장 침체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법인세 감소도 우려된다.
당장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5.8% 급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이날 삼성전자 경기 평택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세수 결손을 처음 언급한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데 따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 한은에서 48조원 급전 조달올해 세수가 세입예산에 크게 못 미치는 ‘세수 결손’이 현실화한다면 이는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 2019년 세입예산은 294조8000억원이었는데 결산상 국세수입은 293조5000억원으로, 1조3000억원이 덜 걷혔다. 2010년 이후 세수결손은 2012년 2013년 2014년 2019년 등 네 차례 발생했다. 올해 세수결손 규모가 최근 10년 만의 최대치였던 2014년의 10조9000억원을 크게 웃돌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금이 걷히지 않으면 정부는 한국은행에서 부족한 자금을 일시 차입한다. 한은 차입은 정부가 한은에서 빌려 쓸 수 있는 이른바 ‘마이너스통장’이다. 한은에 따르면 정부는 올 들어 3월까지 한은에서 48조1000억원을 빌려 썼다. 지난해 빌려 쓴 34조2000억원을 올해는 한 분기 만에 넘어섰다. 정부의 올해 한은 대출금 한도는 50조원으로, 이미 한도에 가깝게 돈을 빌려 썼다. 애초 정부는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예산의 65%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장 지출에 필요한 세수가 모자라다 보니 자금을 일시 차입한 것이다. 다만 정부는 지난달 걷힌 법인세로 20조원가량을 상환했다.
올 하반기에도 세수 부족이 이어지면 정부로선 세입 예산을 축소하거나 적자국채를 찍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정부 예상보다 높아질 수 있다.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 복귀를 위해 올해 관리재정수지(사회보장성 지출을 제외한 재정수지)를 지난해(110조8000억원)의 절반 수준인 58조2000억원으로 줄일 계획이었는데 이런 구상이 틀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강경민/평택=허세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