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 '2인자'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숙청당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북한이 여전히 흔적 지우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조선중앙TV가 지난 1월 2일 방영한 예술영화 '대홍단 책임비서' 제1부 '이깔나무'에서 배우 최웅철의 얼굴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수정돼 다른 배우의 얼굴로 바뀐 사실이 7일 알려졌다.
'대홍단 책임비서'는 1997년 작품으로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한창일 때 개봉했다. 북중 접경인 양강도 대홍단군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사랑과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그렸다. 이 영화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한 최웅철은 장성택의 맏형 장성우의 사위다. 장성택에겐 조카사위다.
'대홍단 책임비서' 속 최웅철의 등장 장면은 모두 박정택으로 교체됐다. 상영 종료 후 제작진 소개 자막에도 최웅철이 아닌 박정택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26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CG까지 이용해 얼굴을 모두 교체한 배경에는 장성택 숙청이 꼽히고 있다.
장성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이자, 북한 권력의 실세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겐 고모부였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장성택이 김정일의 막내아들이었던 김정은을 후계자로 추천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2013년 12월 12일 특별 군사재판에서 '정변을 꾀한 역적'으로 재판받고 조카의 손에 공개 처형당했다.
이듬해인 2014년 '장성택 라인'으로 불리는 노동당 간부들도 줄줄이 주요 보직에서 해임됐다. 장성택의 아내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는 남편 숙청 이후 2020년 1월 26일 설 기념공연 관람 때까지 무려 6년 이상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장성택 처형 이후 '대홍단 책임비서'는 중앙TV에서 전파를 타지 못했다. 이번 방영은 2012년 2월 8일 이후 11년 만이다.
대대적인 편집을 통해 '대홍단 책임비서'가 공개되자, 김정은이 '최고존엄' 자리를 위협했던 인물에 대해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안팎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매체는 온라인 페이지에서 과거 장성택이 등장하던 기사를 모조리 삭제했다. 기록 영화에서도 장성택의 얼굴은 편집됐다.
조선중앙TV는 2013년 10월 7일부터 같은 달 28일까지 9차례 내보냈던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 기록영화인 '위대한 동지 제1부 선군의 한길에서'를 같은 해 12월 7일 재방송했는데, 재방 분에서도 장성택의 모습이 삭제돼 있었다. 장성택의 실각이 공식적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
중앙TV가 지난해 4월 선보인 김정은 위원장 통치 10년 기념 기록영화 '위대한 연대, 불멸의 여정'에서도 '현대판 종파분자'를 비난하는 대목에서 장성택이 모든 직무에서 해임됐다는 2013년 12월 9일 자 노동신문 1면을 클로즈업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