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만 해도 동네에서 빌라 신축 공사가 다섯 곳 이상 동시에 진행될 정도로 붐이었는데 지금은 뚝 끊겼죠.”(서울 관악구 신림동 A공인)
6일 찾은 신림동 빌라촌 일대는 적막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이곳의 부동산 시계는 전세 사기로 크게 홍역을 앓았던 지난해 겨울 그대로 멈춰 있는 듯했다. 빌라 물건을 주로 취급하는 주변 중개업소는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 대표적 서민 주거인 빌라는 올 들어 ‘짓지도, 팔리지도, 살지도’ 않는 주택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세 사기 낙인 효과로 주요 수요자인 저소득 서민과 청년층으로부터도 외면받으면서 빌라시장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저소득·청년 주거 담당했지만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에서 빌라(건축법상 다세대 및 연립주택)의 월별 건축허가 면적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매달 10만㎡ 정도를 유지한 빌라 건축허가 면적은 지난해 7월 5만4311㎡로 감소한 데 이어 올 1월에는 2만9688㎡, 2월에는 1만8866㎡까지 쪼그라들었다.
빌라는 건축비가 브랜드 아파트의 4분의 1도 되지 않고 공사 기간도 4개월 안팎으로 짧다. 주거 수요가 몰리는 서울에서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평가다. 그동안 저소득층과 사회초년생, 청년 주거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이유다. 국토부 통계누리(2021년 기준)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빌라에 사는 거주자 비율은 저소득층(소득 하위 20%)이 18.5%, 중소득층은 20% 정도다. 강남권 고가 빌라에 거주하는 고소득층(소득 상위 20%)은 11.2%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을 신청한 23만7797가구 중 연소득이 4000만원 이하에 해당해 ‘저소득층 보증료 감면’ 혜택을 받은 가구는 31%인 7만3604가구였다. HUG는 “소득 기준에 따라 보증료 감면 혜택을 받은 대부분은 빌라 거주자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빌라 유형은 ‘연면적 40~60㎡ 다세대주택’이다. 전체 다세대주택 81만2403가구 중 37.2%(33만2259가구)가 이에 해당한다. 가족 형태로는 ‘2인 가구’(10만2239가구) 비율이 높다. 젊은 신혼부부가 결혼 후 자녀 출생 전까지 첫 주거지로 빌라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방증이다. ○경매 나오는 매물만 ‘급증’
강서구 화곡동 일대 신축 빌라 전용면적 40㎡ 매물은 3억원 선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화곡동 B공인 관계자는 “1년 전만 해도 깨끗하게 지어진 신축 빌라 분양가가 4억원을 넘겼지만 지금은 시세 파악이 힘들다”며 “마지막으로 매매 거래를 해 본 게 5개월 전”이라고 말했다.
빌라 전세시장에 세입자 발길도 줄고 있다. 지난해 불거진 전세 사기 이슈에다 공시가격 하락으로 전세 수요가 대폭 줄었다. 집주인은 기존 전셋값보다 5000만원가량 낮은 가격에도 새 세입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빌라 가치 하락은 경매시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빌라 경매 건수는 841건으로 전년 동월(392건) 대비 114%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낙찰률(경매 건수 대비 낙찰 건수 비율)은 23.5%에서 9.5%로 급감했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도 90.2%에서 79.4%로 떨어졌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거주 여건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데다 높은 전세가에 따른 깡통전세와 전세 사기까지 겹치면서 낙찰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택 거래시장에서도 빌라는 찬밥 신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국 주택거래량 7만7490건 중 아파트가 6만3909건으로 82.5%를 차지했다. 반면 빌라 거래량은 7021건으로, 전체의 9.1%에 그쳤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빌라는 서울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서민층의 대표적 대안 주거”라며 “지금은 가격이 낮아진 아파트 매물에 밀려 수요층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종필/오유림/최해련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