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태어난 지 300주년이 되는 해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정작 그의 시대에 경제학자라는 직종은 없었다. 스미스는 에든버러에서 수사학과 문학을 강의하며 교육자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곧이어 글래스고 대학에서 스미스는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도덕감정론>을 집필했다.
도덕감정론의 명성 덕에 그는 글래스고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돈 많은 귀족 자제 버클루 공작의 여행 가정교사가 됐다. 이 엄청난 부잣집 아들과 함께 유럽을 순회하며 그는 국부론의 바탕이 되는 경험과 자료를 축적했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세계 여러 지역의 경제를 조망했다. 그는 당시 중국이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부유하고 비옥하고 근면한 인구가 넘치는 나라”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경제 성장은 미미한 수준이다. 일거리는 늘 부족하고 인력은 넘쳐나기에 노동자들의 처지는 매우 열악하다. 이러한 중국을 스미스는 ‘정체된’ 경제의 전형으로 제시한다. 그래도 중국은 영국 동인도회사가 지배하는 인도 벵골 지방보다는 나은 편이다. 벵골도 땅이 비옥하고 사람들은 근면하다. 그럼에도 고질적인 기근과 흉작에 시달리는 인도는 ‘퇴행하는’ 경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원흉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착취임을 스미스는 지적한다. 반면에 국부론에서 ‘전진하는’ 경제의 예로 드는 것은 북미주 영국 식민지들이다. 곧 독립하게 될 북미주 영국 식민지에서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꾸준히 상승했고 생산 활동 인구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스미스 시대와 비교하면 지금 세계 상황은 정반대다. 18세기에 ‘퇴행’의 오명을 썼던 인도는 ‘전진’하는 젊은 경제를 자랑한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서구에 당한 수모를 말끔히 씻고 미국과 서방의 압력에 굴하지 않을 수준의 부국강병을 이룩했다. 게다가 중국은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자유방임형 경제가 아니라 ‘보이는 손’인 국가 주도하에 국력을 키워냈다. 인도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를 무시하고 러시아 원유를 당당히 수입하고 있다. 중국은 중동의 오랜 원수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화해시키고 러시아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자원부국들과 손잡은 제조업 강국 인도와 중국은 ‘전진’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반면에 유형·무형의 온갖 문제로 병들어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정체’에서 ‘퇴행’ 사이를 오가고 있다.
스미스의 국부론은 당시의 중국 인도 북미의 경제를 정확히 진단했다. 물론 서구 중심적 편견이 깔려 있음을 문제 삼을 수는 있다. 그러한 편견을 세계의 모습이 현저히 달라진 오늘날에도 계승하고 있다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특히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중국과 인도를 18세기 스미스의 시각으로 깔보며 오로지 미국과 서방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태도가 정치·경제·언론·문화·교육계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서방과의 ‘가치연대’를 심화시킬 것인가? 어떻게 해야 미국과 서방의 사랑을 받는 나라가 될까? 이러한 질문들에만 끌려가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