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경쟁 속 중국의 새로운 '무기'…인수합병 승인 딴지

입력 2023-04-05 15:38
수정 2023-04-0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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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 당국이 미국 기업의 인수합병(M&A) 승인을 지연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대부분 중국 내 사업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승인을 보류하거나 늦추는 방식으로 자국에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는 지적이다.

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 반독점 당국이 미국 기업과 관련된 다수의 M&A 건에 대한 심사를 늦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이스라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타워세미컨덕터 인수(52억 달러), 미국 칩 제조기업 맥스리니어의 대만 실리콘모션 인수(38억 달러) 계획 등이 포함된다.

소식통은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미국 기업에 인수합병 승인을 해주는 조건으로 다른 국가에 판매하는 상품을 중국에도 팔도록 요청하거나 중국 기업에 이득이 될 만한 조건을 내걸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계 로펌 윌머헤일의 변호사 레스터 로스 “이는 외국 기업들에 대항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인텔이 중국 다롄 플래시메모리 공장 사업을 한국 SK하이닉스에 매각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중국 반독점 당국은 인수 발표 14개월 만인 2021년말 심사 대상 8개국 중 가장 마지막으로 이를 승인했는데, 당시 중국 내 생산 확장 등 6가지 조건을 달았다. 인수 승인을 지연해 자국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조건부 승인을 이끌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미 화학기업 듀폰은 지난해 11월 중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전자재료 전문업체 로저스를 인수하는 52억 달러(약 6조8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취소했다. 듀폰이 로저스에 지불해야하는 계약 해지 수수료만 1억6250만 달러(약 2000억원)에 달한다.

중국이 2000년대 후반부터 반독점을 관리하기 시작할 때만해도 미국은 이를 중국 시장 경쟁의 개선으로 여기고 환영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외국 기업이 포함된 거래를 검토할 때 많게는 10개 기관이 심사과정에 참여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 반독점 법에 따라 다국적 기업의 경우 기업결합하는 두 회사가 중국 내에서 연간 1억1700만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면 정부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에는 중국 당국의 심사가 인력 등 자원 부족으로 늦어졌다면, 최근엔 반독점 관련 기관이 정치적·경제적 목표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개방개혁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다국적 기업에 다른 규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

미 컨설팅사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의 에이미 셀리코 대표는 “중국이 외국 기업들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드는 가운데 중국 당국의 글로벌 M&A 승인을 얻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텔은 올해 1분기 안에 타워 인수 계약을 완료한다는 목표였지만 최근 예상 시점을 올해 상반기로 늦췄다. 미 반도체회사 브로드컴이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VM웨어를 인수하는 거래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대형 게임업체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역시 중국 당국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