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시라" ATM 양보에 범죄 직감…암 투병 경찰의 '촉'

입력 2023-04-05 07:40
수정 2023-04-05 09:43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휴직 중인 경찰관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거책을 잡았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충북 청주상당경찰서 소속 정세원 순경은 지난달 30일 오후 전북 익산시의 한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서 수상한 남성을 목격했다.

많은 고객들이 ATM을 이용하고자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정 순경 앞에 있던 30대 후반의 남성이 돌연 정 순경에게 순서를 양보한 것이다. 정 순경은 "입금이 오래 걸리니 먼저 하시라"는 남성의 말을 듣자마자 범죄를 직감했다고.

정 순경은 남성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얼마나 입금하시는 거냐", "텔레그램으로 지시받고 일하시는 거냐" 등 날카로운 질문에 남성은 쭈뼛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정 순경은 자신이 경찰임을 밝히고 그의 가방 속을 확인한 결과, 세 개의 봉투에 나뉘어 담긴 현금 1700만원을 발견했다.


정 순경은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러자 남성은 "자신은 잘 모르니 담당 직원이랑 통화해보라"면서 휴대폰을 건넸고, 신원 미상의 직원은 통화에서 "금 거래를 하는 거라 이런저런 돈을 입금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어느 거래소에서 근무하냐"는 결정적인 질문에 결국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정 순경은 즉시 112에 신고하고 남성이 도망가지 못하게 계속 추궁하며 붙잡은 뒤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남성을 인계했다. 익산경찰서는 1700만원을 회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준 뒤 사건을 수사 중이다.

3년 차 경찰관인 정 순경은 지난해 10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휴직한 뒤 고향 익산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항암 치료를 위해 가슴에 케모포트(약물 투여를 위한 기구)를 삽입한 상태여서 뛰거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저 없이 나서 1700만원 피해를 막아냈다.

정 순경은 "1년간 지능범죄수사팀에서 근무했던 덕분에 '먼저 하시라'는 말 한마디에 느낌이 왔다. 마땅히 경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며 "송금 직전 검거에 성공,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