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의 부동산 투자 회사(REITs·리츠)에 조기 환매를 요청하는 규모가 2월 대비 15%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앙은행들의 긴축(금리 인상) 기조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 데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촉발된 은행 위기가 부동산 금융시장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3월 기준 블랙스톤의 리츠 상품 ‘Breit’에 조기 환매를 요구한 규모가 45억달러(약 6조원)에 달했다. 지난 2월 환매 요구액(39억달러) 대비 15% 증가했다. 블랙스톤은 “펀드에 설정된 환매 한도를 이용해 인출 요구액 중 6억6600만달러만 고객들에게 돌려줬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작년 11월부터 고객의 조기 환매 요청 규모가 월 기준 순자산의 2%, 분기 기준 순자산의 5%를 넘으면 이를 제한해 오고 있다.
블랙스톤의 간판 상품인 해당 부동산 펀드는 부유층 개인 투자자에게 부동산 투자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7년 출시됐다. 설립 5년 만에 운용자산 규모가 700억달러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부문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달 불거진 SVB 사태 이후로는 상업용 부동산 투자 익스포저가 많은 중소은행의 연쇄 부실화 전망까지 더해졌다. 이 부문에 대한 대출 부실 우려가 높아지면서다.
FT는 “지난달 대규모 조기 환매 요구는 블랙스톤 경영진이 ‘금융 변혁기일수록 리츠로 얻을 수 있는 투자기회가 많다’며 적극 홍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역내 금융회사에 상업용 부동산 펀드에 대한 점검 작업을 벌일 것을 요구했다. 부동산 부문이 유동성 위기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 전문 리츠는 지난 10년간 세 배 이상 급증해 1조유로에 달한다. 하지만 MSCI 유럽 부동산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24% 급락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ECB는 “긴축 기조 등으로 투자자들이 리츠에서 돈을 인출할 가능성이 늘어난 반면 펀드 자산 자체의 유동성은 제한적”이라며 “개방형 부동산 펀드의 구조적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시급히 나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