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 새 길 연 韓의사·美공학도 "사망률 확 낮출 것"

입력 2023-04-04 17:41
수정 2023-04-12 20:27

아미르알리 탈라사즈 가던트헬스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와 이지연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한 국제 학회에서다. 당시 스탠퍼드대 박사후 연구원이던 탈라사즈는 이 교수에게 “혈액을 분석해 항암제 바이오마커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이 교수는 협력 연구를 제안했다. 첨단기술력을 보유한 과학자와 얼리어답터 의사의 만남이었다.

2012년 탈라사즈는 미국 팰로앨토에 가던트헬스를 세웠다. 미국 혈액종양내과 의사 80%가 쓰는 세계 1위 액체생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교수는 4일 “당시 첫 임상연구에 참여했는데 30번째 환자에게서 특정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다”며 “해당 환자는 신약 임상에 참여해 7년 넘게 생존했다”고 했다. 공학도와 의사의 만남이 환자를 살린 것이다. ‘공상과학’ 매진한 가던트헬스 암에 걸리면 조직을 떼어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생체검사(생검)를 한다. 액체생검은 혈액 속 유전자 등을 건져 암세포 성질을 파악하는 검사다. 세포 밖 혈액을 떠다니는 DNA 조각이 처음 보고된 것은 1948년이다. 하지만 암 DNA 조각을 파악해 치료에 유용한 돌연변이를 찾을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공상과학’ 같던 기술을 처음 상용화한 곳이 가던트헬스다.

2014년 미 식품의약국(FDA)은 첫 번째 액체생검 ‘가던트360’의 시판허가를 했다. 60개국에서 25만 명 넘는 암 환자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기업가치는 3조원을 넘었다. 탈라사즈 CEO는 속도와 정확성을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55개 유전자를 분석하는 가던트360 CDx는 결과 전송까지 1주일도 걸리지 않는다”며 “경쟁 기업들은 두 배 넘게 소요된다”고 했다. 치료에서 예방으로 사업 확장가던트헬스 본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빅데이터를 기반 기술로 삼고 있어서다. 몸속 세포는 37조2000억 개에 이른다. 이들로부터 나온 유전자 조각의 양도 방대하다.

혈액 속 무의미한 신호 중 암 돌연변이를 확인하는 데 꼭 필요한 마커를 찾는 게 기술의 핵심이다. 불필요한 노이즈를 제거해 다른 기업보다 민감도를 50배 이상 높였다. 스탠퍼드대 데이터 분석력이 의료에 접목돼 ‘산업’으로 성장했다.

탈라사즈와 이 교수의 만남도 학제를 뛰어넘는 ‘융합’이었다. 이 교수는 “스탠퍼드대 전기공학도가 첨단기술을 만들고 의료진이 일찍 수용한 협력이 주효했다”며 “개발 초기 매일 피드백을 주고받으려고 탈라사즈가 카카오톡까지 깔았다”고 했다. “50억달러 연매출 진단 선보일 것”가던트헬스는 암 모니터링용 ‘리빌’, 암 예방용 ‘실드’로 제품을 확대하고 있다. 실드는 혈액 속 유전자 변이와 단백질 등을 분석해 대장암을 진단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만 45~84세 성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한 결과 대장내시경 검사보다 정확도가 높았다. 지난달 FDA에 승인 신청을 했다.

폐암 등으로도 검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2032년 예상 매출은 50억달러다. 탈라사즈 CEO는 “암 사망률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던트헬스는 일본과 중국에 각각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연구소 신설 계획에 대해 탈라사즈 CEO는 “정부 규제와 건강보험 진입 여부 등을 토대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가던트헬스는 루닛과 함께 생검 정확도를 높인 서비스를 선보였다. 세계 15개 기업과 65개 임상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