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초과 생산 시 정부가 의무매입하도록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안건이 4일 국무회의에 상정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거부권 행사 안건은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상정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미 주무장관과 국무총리가 양곡관리법 반대 입장을 밝혔고, 여론 수렴이 어느 정도 됐다고 보고 있다”며 4일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정부·여당의 반대에도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이다.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를 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넘게 하락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의무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간다. 국회가 이 법을 다시 통과시키려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석수가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115석인 점을 감안하면 재의결은 어렵다.
농식품부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 23만t 수준인 초과 공급량이 2030년 63만t을 넘어서고 그로 인해 평소 80㎏ 기준 20만원대 안팎인 쌀값이 17만2000원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피해가 영세 농민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농식품부 분석 결과, 정부가 쌀을 의무매입했을 때 0.5㏊ 미만 논을 경작하는 영세 농가의 순수익률은 2021년 22.9%에서 2030년 1.4%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수익은 농가 총수입에서 비료비 인건비 등 경영비와 자기 임금을 뺀 금액이다. 영세농은 농사를 지어도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는 것이다.
반면 7~10㏊의 농지를 가진 대농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하다. 같은 기간 대농의 순수익률은 41.8%에서 25.6%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계화율이 99.3%에 달하는 쌀 농사 특성상 재배면적이 클수록 평균 비용이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전체 농가(102만3000가구)의 51.9%인 53만5000가구가 농지 0.5㏊ 미만을 가진 영세농이다. 5㏊ 이상을 가진 대농은 3만6000가구로 전체의 3.5%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의무매입이 현실화하면 생산비가 낮은 대농은 재배면적을 확대해 수익을 늘릴 유인이 생기고 과잉 공급이 고착화된다”며 “그 피해는 대부분 영세 중소농에게 집중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더 강력한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간 진보 농민단체 중심으로 요구돼온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식량자급률 법제화 등을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