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반격 나선 시진핑…덩샤오핑 '도광양회' 막 내렸다

입력 2023-04-03 15:08
수정 2023-04-10 00:31

중국이 미국 주도의 대(對)중 포위망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정비를 끝낸 중국은 최근 유럽연합(EU)과 아시아 주요국을 겨냥한 경고성 언행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덩샤오핑의 '숨어서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 외교 공식이 이제 완전히 막을 내렸다"며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및 체제 경쟁에서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 총력전에 나섰다"고 2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날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3년 만에 중국을 찾아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친강 외교부장(장관) 등과 회담을 진행했다.

왕 위원은 하야시 외무상에 "일본 국내 일부 세력이 미국의 잘못된 대중 정책을 추종하며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 관련 문제에서 중국을 도발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친 부장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거론했다. 그는 "과거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따돌려 압박을 가했던 미국이 이번엔 중국에 그 낡은 수법을 쓰고 있다"며 "(똑같은) 고통을 겪었던 일본이 위호작창(爲虎作?·악인의 앞잡이 노릇)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미국과 합심해 첨단 반도체 장비 23품목의 대중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발표한 데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중국 인터넷 감독기구인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이 앞서 지난달 31일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에 대한 인터넷 안보 심사를 실시하겠다고 한 것도 "일본과 한국을 겨냥한 경고장을 날린 셈"이라는 분석이다. 상하이의 반도체연구회사 IC와이즈의 왕리푸 분석가는 이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해당 조사는 여전히 중국 내 반도체 제조 시설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국의 행동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체제 정비를 끝낸 지난달부터 국제 외교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20일 러시아모스크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중동의 오랜 앙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 관계 재개를 성공적으로 중재한 것도 중국이다. FT는 "그간 중동 정의 중재자를 자처한 국가들 중 첫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말 폐막한 보아오포럼에서 스페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의 정상들을 차례로 만나 "미국 주도의 디커플링(탈동조화)와 공급망 단절에 저항해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오는 6일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3자 회동도 예정돼 있다.

마크롱 대통령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우방국인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반면, 시 주석은 미국과 EU를 갈라치기 해 미국의 대중 봉쇄 정책을 벗어나는 발판으로 삼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푸콩 주EU 중국대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유럽이 제정신이라면 중국 같이 번창한 시장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중국이 글로벌 외교전을 향한 토대를 2년 전에 이미 마련했다는 분석도 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인스티튜트 자료에 의하면 중국 해외 외교공관은 2021년 기준 275개소로 미국(267개소)를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자오 통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이제 미국의 리더십을 잠식하고 중국식 통치를 촉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