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시에 합격한 날. 합격증을 받으러 본관에 함께 들어서던 아버지가 “아!”하는 비명 같은 탄성을 질렀다. 나도 놀랐지만 주위에 있던 이들도 모두 놀랐다. 이어서 아버지는 큰소리로 “참 좋은 학교에 합격했다. 내가 가르치고 싶었던 게 저거다. 저렇게 현관에 떠억 하니 내건 창학정신을 봐라. 일류학교답다”라고 했다. 아버지가 지팡이를 들어 가리킨 편액에 모두 눈길을 줬다. 그날 본 고사성어가 ‘극기복례(克己復禮)’다.
나중에 알았다. 그 액자는 국어교사로 재직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이 제자(題字)한 작품이었다. ‘극기복례’는 ‘욕망이나 삿(詐)된 마음 등을 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한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씀에서 유래했다. 제자 안연(顔淵)이 공자에게 인(仁)에 관해 묻자 가르친 말이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오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 만일 사람이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온다면, 그 영향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인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이 인은 제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남의 힘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안연이 다시 인을 실천하는 조목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자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름’을 뜻하는 ‘극복(克復)’은 ‘극기복례’의 줄임말이자 동의어다. 국어 시험에 저렇게 썼다가 틀렸다. 표준 국어 대사전은 ‘극복(克服)’으로 쓴다.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내거나 적을 이겨 굴복시킴’을 의미하는 말이란다. ‘극복(克復)’은 ‘이기어 도로 회복하다’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지금 봐도 차이를 모르겠다.
아버지는 예(禮)를 형식으로 보았다. 아버지는 “형식 속에 내용을 담는 것이지 내용에 형식을 붙이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래서 형식을 중요시했다. 아버지는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그 안에 내용을 꽉 채워라. 그러자면 맨 먼저 너의 제원을 파악해라. 100m를 몇 초에 달릴 수 있는지, 밥을 며칠 동안 굶어도 살 수 있는지, 잠을 며칠이나 안 자도 버틸 수 있는지부터 너를 모두 시험해라”라고 했다. 이어서 아버지는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뭘 할 수 없는지를 살펴라. 그러면 뭘 배워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거다. 너도 모를 앞날의 너를 찾고 그려라”라고 주문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육은 전인교육이다. 여기서 앞으로 살아갈 모든 걸 배우고 익혀라. 그 이후에는 간섭 안 한다. 대학은 네가 가야겠다면 알아서 가라”라고 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 후 점검은 했지만 간섭하지 않았다.
현관을 나와 작은 정원을 보고 아버지는 또다시 탄성을 질렀다. ‘성심껏 배우자 책임을 다하자 나라를 빛내자’라는 교훈석을 보고서다. 교훈을 또박또박 힘주어 읽은 아버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저기 다 새겨놨다. 하나도 버릴 말이 없다. 반드시 지켜라. 그중 첫째가 성심이다. 성심은 거짓이 없어야 한다. 자신을 속이지 마라.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네가 봐서 오직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지는 삶이면 된다. 그렇지 않은 날은 삶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내 삶의 목표가 정해졌다. 나는 따랐고 지켰다. 내 힘으로 얻은 결과여서 소중하다.
정성을 다하는 성질이 성실성(誠實性)이다. 사전은 ‘사회규범이나 법을 존중하고 충동을 통제하며 목표 지향적 행동을 조직하고 유지하며 목표를 추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으로 성실성을 정의한다. 이 특질을 나타내는 말은 체계적, 믿음직함, 근면, 규칙적, 정돈, 시간을 잘 지킴, 야망이 큼 등이다. 인간이면 반드시 지키고 가꾸어야할 덕목이다. 손주들에게도 물려줘야 할 첫 번째 품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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