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미국 사회보장기금(SSR)의 고갈 예상 시점이 앞당겨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금리 인상으로 경제가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했기 때문이다.
1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사회보장국은 사회보장기금 고갈 시점이 지난해 예상치보다 1년 앞당겨졌다고 지난 31일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사회보장국은 기금 고갈 시점을 2035년으로 전망했다. 이번 조사에선 1년 앞당겨 2034년에 소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방 정부가 운용하는 사회보장기금은 근로자의 임금으로 충당된다. 근로자 급여의 6.2%(최대금 12만 8000달러)를 납입하면 고용주가 동일 금액을 납부한다. 근로자 월급의 12.4%가 기금에 적립되는 셈이다. 납입액은 같은 해 은퇴자들에게 지급된다. 잔여 금액은 기금에 예치된다. 대부분 미 국채에 투자한다.
노동생산성 저하가 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진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보장국은 지난해 GDP 성장률이 둔화하자 생산성 전망치를 지난해 추정치보다 3% 낮췄다. 인플레이션으로 유출액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기금 수령액은 전년 대비 8.7% 증가했다. 1981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저출산과 함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의 은퇴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도 기금 고갈 원인 중 하나다. 1974~2008년까지 수혜자 한 명당 근로자 수는 3명을 웃돌았다. 2022년 이 수치는 2.8명으로 줄었다. 2035년 2.3명까지 줄며 기금의 재정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회보장기금은 2021년부터 적자로 전환했다. 국채 투자에 따른 이자 수입보다 더 많은 금액이 기금에서 유출됐다. 기금 규모는 2020년 2조 9000억달러(약 3799조원)에서 2022년 2조 8000억달러(약 3668조원)로 감소했다.
사회보장국 산하 사회보장 수탁위원회에 따르면 앞으로 75년 동안 기금을 유지하려면 납입률을 즉시 3.44%포인트 올려 15.84%로 바꿔야 한다. 지급액을 지금보다 21.3% 삭감하면 납입률을 높이지 않고 기금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지금부터 기금에 납입한 근로자는 은퇴 이후 예정된 수령액의 80%만을 받게 된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국가부채 한도 조정 협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회보장기금에 관한 논의는 제외됐다. 공화당이 부채 한도 증액을 조건으로 기금 지출액 삭감을 내걸어서다.
WSJ은 "기금이 처한 재정 위기에 대한 초당적인 공감이 없다면 그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며 "정치적인 '방사성 폐기물'이 되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