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천하의 알렉산더를 죽인 범인은 모기였다

입력 2023-03-31 17:59
수정 2023-04-01 00:31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은 서른세 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고열을 호소한 지 열흘 만에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 유력한 사인(死因)은 말라리아다.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가 옮기는 병이다. 지중해 일대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방대한 제국을 세운 영웅도 모기 한 마리를 당해내지 못한 셈이다.

<한 권으로 읽는 미생물 세계사>는 ‘가장 진화한 인간과 가장 원시적인 미생물의 생존을 건 술래잡기’에 주목한다. 인류는 미생물이 유발하는 질병에 맞춰 각종 치료제를 개발했지만, 미생물 역시 그에 맞춰 진화를 거듭했다.

저자는 일본의 언론인이자 도쿄대·홋카이도대 교수 출신인 이시 히로유키다. 그는 유엔환경계획(UNEP) 상급 고문을 비롯해 동중유럽환경센터 이사 등을 지낸 환경 전문가다. 이시는 ‘대도시 인구 과밀화와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미생물이 증식하기 유리해지고 있다’고 봤다.

2013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한 차례 개정을 거친 뒤 이달 한국어로 출간됐다. 2018년 개정판 머리말에서 이듬해 말 코로나19 창궐을 예견한 듯 서술한 점이 흥미롭다. 그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지금까지 30~40년 주기로 발생했는데, 1968년 ‘홍콩 독감’ 이후 대유행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잊고 있던 것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시는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는 인간이 아니라 ‘미생물’이다”고 선언한다. 예를 들어 14세기 중반 유럽에서 발발한 페스트는 중세 사회를 완전히 바꿔놨다. 전체 인구의 30~40%가 사망하자 지방 농촌은 극심한 일손 부족에 직면했다. 해마다 조세를 내던 농민이 거꾸로 영주한테 품삯을 받아 가며 일했다. 장원 질서가 무너지는 한 축에 페스트균이 있었던 것이다.

향후 감염병의 예상 격전지로는 중국과 아프리카를 지목한다. 두 지역 모두 공중위생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신종 감염병의 계속된 출현을 우려하며 책을 마친다. “미생물과의 싸움은 아직 앞이 보이지 않는다. 술래잡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