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32)가 러시아 간첩 협의로 현지에서 체포됐다.
30일(현지시각) 인테르팍스, 스푸트니크 통신 등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이날 WSJ 모스크바 지국 소속 게르시코비치 특파원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러시아 중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구금했다고 보도했다.
냉전 이후 미국인 기자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받을 경우 최대 2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AP 통신은 보도했다.
FSB는 "게르시코비치는 미국의 지시에 따라 러시아 군산 복합 기업 중 한 곳의 활동에 대한 기밀 정보를 수집했다"며 "미국 정부를 위한 게르시코비치의 불법 활동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FSB는 게르시코비치의 혐의와 관련한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모스크바로 이송돼 FSB의 미결수 구금시설인 레포르토보 교도소에 수감될 것이라 관측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전화회의에서 "이번 사안은 FSB 소관"이라면서도 "우리가 아는 한 그 기자는 현행범으로 적발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WSJ 모스크바 지국의 업무에 대해선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수행하는 WSJ 직원들의 업무 지속에는 아무 장애물이 없다"며 "허가받은 기자들은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자국 내 러시아 매체를 상대로 보복할 가능성에 대해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날을 세웠다.
이번 사건이 미국과의 죄수 교환의 계기가 될 수 있는지 질문에 대해 "그런 정보는 없다"며 "그 주제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텔레그램을 통해 성명을 내고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들이 저널리즘이 아닌 활동을 은폐하기 위해 외국 특파원 신분, 취재 비자 및 허가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며 "주요 서방인이 현행범으로 적발된 것 역시 처음이 아니다"고 전했다.
게르시코비치 기자는 러시아 출신으로 부모님은 미국에 거주 중이다. 영어와 러시아어에 모두 능통하다. 2017년부터 러시아를 취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 합류 전 AFP 모스크바 지국에서 활동했으며, 이전에는 영어 뉴스 웹사이트인 더 모스크바 타임스의 기자였다. 최근에는 러시아 정치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주로 취재했고, 금주 초 송고된 그의 마지막 기사는 서방 제재에 따른 러시아 경제 둔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WSJ는 성명을 내고 "회사는 FSB가 제기한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우리의 믿음직하고 헌신적인 기자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안전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게르시코비치 기자 및 그의 가족과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구금 상태인 미국인의 신병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죄수 교환 협상을 통해 작년 12월 여자 프로농구 스타 브리트니 그라이너를 석방시켰다. 하지만 미 해병대원 출신 기업 보안책임자 폴 휠런은 여전히 러시아에 구금된 상태다. 2018년 구금된 휠런 역시 간첩 혐의를 받고 있어 교환 협상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