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대신 육아휴직 쓰려했는데…책상 뺄 각오하라네요" [이슈+]

입력 2023-04-02 16:01
수정 2023-04-02 16:02


"1년 전 결혼해 최근 임신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소규모 회사에 다니고 있어, 보다 큰 회사에 다니는 제가 사수에게 '남자 직원도 육아휴직을 사용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쓸 수는 있는데, 책상 뺄 각오해야 한다'는 답이 헛웃음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서울의 한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33살 김 모 씨는 기자와 만나 "도저히 아기를 낳을 엄두가 안 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빨간불이 켜졌지만, 여전히 김 씨를 비롯한 수많은 직장인은 받게 될 불이익이 두려워 육아휴직 사용을 망설이고 있다. 아이를 출산하면 당연히 육아휴직을 하는 사회적 문화를 정착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마친 뒤 불이익을 받았다는 목소리는 공직유관단체에서도 나오고 있다. 시내버스 운전 업무를 하는 A씨는 1년간 육아휴직을 다녀온 뒤 세종도시교통공사 희망노선 배치 신청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했고, 이후 승무사원들이 기피하는 '다중노선'으로 배치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며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육아휴직자는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집단"이라며 규정 개선을 권고했지만, 공사는 "공정한 근로자 배치 방식인 희망노선 배치 제도를 지속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육아휴직을 사용했다가 불이익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전해지는 가운데, 국내 직장인 10명 중 4명 이상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눈치를 보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해 지난달 26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5.2%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한 제보자는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 6개월이 돼가는데 특별한 보직이 없고 급여도 깎였다"며 "복귀할 때 경황이 없어 실수로 계약에 동의했는데 복직 후 깎인 금액만 100만원이 넘는다"고 하소연했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과 함께 제도 위반 사업장을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도 근로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달 28일 내놓은 저출산 해법에는 육아휴직을 쓸 수 없도록 하는 기업에 근로감독을 확대하고 전담 신고센터를 신설하는 등 집중 단속을 벌이는 안이 포함됐다. 또 육아기 재택근무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을 검토하고 남성 육아휴직 참여자에 대한 인센티브와 배우자 출산휴가 관련 중소기업 급여 지원을 늘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위 회의를 주재하며 "다수의 노동 약자는 현재 법으로 보장된 출산·육아·돌봄 휴가조차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저출산 문제는 여야가 따로 없는 중요한 국가적 의제인 만큼,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보조를 맞추고 있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대표 발의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개정안'은 육아휴직을 사업주 허용 없이 의무화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가 모성을 보호하거나, 근로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에 사업주가 이를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