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축소 사회’에 진입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0.78명이고, 수도권·대도시 인구 집중으로 농촌 소멸 위기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농촌은 일자리 감소, 교육과 문화 등 정주 여건 악화로 주민 고령화와 마을 과소화 추세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지속가능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2년 농어촌 시·군 4곳 중 3곳이 소멸 위험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수가 줄어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빈집과 폐가들이 늘어난 지 오래다. 병원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음식점과 소방서 등 기본적인 생활 서비스 기능도 위축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출산장려금과 같은 단순한 인구 부양책이나 의료·보육 등 개별 분야의 분절적 지원이 농촌 소멸 속도를 늦추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농촌 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는 농촌 소멸을 막기 위한 근본적 제도의 하나로 농촌공간계획을 새롭게 도입한다. 농촌도 도시처럼 용도별로 구획화(zoning)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농촌 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3월부터 시행된다. 농촌정책의 숙원을 풀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농촌공간계획법의 주요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농촌 공간 구획화를 위한 ‘농촌특화지구’를 도입한다. 주민의 거주 환경을 보호하고 생활 서비스 시설의 입지를 유도해 정주 기능을 강화하는 ‘농촌마을보호지구’가 대표적이다. 또 산업, 에너지, 경관 등 토지 이용 목적에 따라 공간을 구분 지어 집적화하고 효율화해 농촌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
둘째, 지역 스스로 주도하는 중장기 농촌공간계획 체계가 마련된다. 정부는 최소한의 방향만 제시하고, 지역이 특색 있는 여건을 반영해 자율적인 계획을 수립하도록 한다. 시장·군수는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농촌특화지구를 지정할 수 있으며 주민은 주민협정, 주민협의회 등을 통해 농촌특화지구 지정과 운영에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셋째, ‘농촌협약 제도’를 통해 농촌공간계획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협약은 농촌 재생 사업을 패키지로 지원하기 위한 정부와 시·군 간의 약속이다. 2031년까지 400개 생활권역별로 농촌 공간 정비, 주거·정주 여건, 일자리·경제, 사회·생활 서비스 등 핵심 기능별 사업을 농촌협약을 통해 추진할 계획이다.
농촌이 사라지고 있다. 큰 위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간과하게 되는 이른바 ‘회색코뿔소’ 위기다. 농촌공간계획 제도를 통해 인구 감소 영향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지역의 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나가겠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농촌 공간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