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지주에 이어 우리은행이 다음달 콜옵션(조기 상환) 만기가 돌아오는 코코본드(상각형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을 행사한다.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의 코코본드 전액 상각 사태로 투자자의 불안 심리가 확산한 데 따른 선제 조치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독일 도이체방크 위기설로 시작된 ‘뱅크데믹(은행과 팬데믹의 합성어)’ 불길이 국내 은행권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콜옵션 행사 나선 금융사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다음달 25일 콜옵션 만기가 되는 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2013년 4월 발행)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했다. 코코본드는 만기가 없거나, 만기가 통상 30년 이상으로 길어 주식과 채권 성격을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 채권이다. 영구채 성격이 강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산정 때 자본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금융회사의 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된다. 우리은행은 오는 7월 4000억원, 11월 2000억원 등 6000억원 규모의 코코본드 콜옵션 행사일이 돌아온다.
전날 신한금융은 다음달 콜옵션 만기가 도래하는 1350억원 규모의 원화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을 행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만기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콜옵션 행사 방침을 미리 밝힌 것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글로벌 은행 시스템 우려 확산에 따른 선제적 조치”라며 “스케줄에 맞춰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신한지주의 자금버퍼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그룹도 콜옵션 만기가 돌아오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 상환을 예정대로 행사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오는 10월 1800억원, 하나금융지주는 11월 2960억원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할 예정이다.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은 올해 콜옵션 만기가 되는 물량이 없다.한국판 CS 사태 발생 가능성 낮아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국내 은행권 코코본드 발행 잔액은 31조5000억원이다. 금융지주가 19조5000억원, 은행이 12조원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올해 콜옵션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은 4조원에 달한다.
국내 은행이 발행한 코코본드는 모두 금융사 위기 등 특정 상황에서 상각 처리되는 구조다. 극단적인 위기 상황이 닥치면 채권자 동의 없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CS의 경우 상각 조건 중 하나인 ‘파산하거나, 부채의 중요한 금액을 지급할 수 없거나, 기타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공부문 자본 지원이 있을 경우’에 해당해 160억스위스프랑 규모의 코코본드가 모두 상각됐다.
그러나 국내 은행권에선 CS와 같은 대규모 상각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내에서의 코코본드 상각 사유는 금융당국으로부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거나 보통주 자본비율이 5.125% 미만으로 떨어지는 경우에 한한다. 국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15~16%로 BIS 권고치(8%)를 웃돈다. 수신 대비 여신 비율도 90% 이상으로 위험 자산 투자 실패로 은행 전체가 타격을 받은 CS와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낮다.
다만 코코본드에 대한 투자심리 위축으로 자금조달 조건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일반적으로 금융사들은 코코본드를 조기 상환하고, 새로 코코본드를 발행해 상환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차환)한다. 그러나 최근 채권 금리가 치솟은 가운데 투자자까지 줄어들면 금융사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코본드(신종자본증권)
채권으로 분류돼 이자를 지급하지만 발행 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이자 지급이 중단되거나 전액 상각처리될 수 있는 채권을 말한다. ‘Contingent Convertible Bond(우발전환사채)’의 앞 두 글자씩을 따서 코코본드라고 부른다.
박상용/김보형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