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소비자’는 법률적으로 사업자가 제공하는 물품 및 용역을 소비생활 또는 생산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자(者)를 뜻한다. 물품을 최종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소비자이고, 중간재로 활용하는 주체도 소비자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사는 사람은 모두 소비자로 불린다. 그래서 기업은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한다.
뜬금없이 소비자 얘기를 꺼낸 것은 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토레스(사진) 때문이다. 지난해 등장한 토레스의 흥행은 대단했다. 출시 8개월 만에 3만 대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 오자 예기치 못한 불만이 하나 제기됐다. 이른바 ‘폭설 헤드램프’ 논란이다. 디자인을 부각하기 위해 노출형 헤드램프를 채택한 결과, 주행 중 쌓인 눈이 램프의 밝기를 낮췄다.
눈이 올 때 자동차가 주행하면 헤드램프엔 눈이 당연히 쌓인다. 문제는 쌓인 눈이 얼마나 빨리 녹느냐다. 램프의 표면적이 넓으면 그나마 시야 확보가 되지만, 좁으면 조명 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지난해 겨울 토레스에 소비자들이 쏟아낸 불만은 후자 탓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부터다. 겨울이 지나면 논란은 자연스럽게 잦아들고 불만은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KG모빌리티는 토레스의 헤드램프에 커버 등을 마련해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소비자가 만드는 자동차’ 시대를 열겠다며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토레스가 KG모빌리티 주력 차종이라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출시 예정인 전기 SUV(프로젝트명 U100)의 이름을 ‘토레스 EVX’로 정한 것도 토레스를 향후 주력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LPG 바이퓨얼’ 시스템을 토레스에 적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5L 가솔린 직분사 엔진에 LPG 또는 휘발유를 선택적으로 연소되도록 했는데, 출력이 ‘쏘나타 LPG’보다 높다. 배기량이 작다는 이유로 중형 택시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배기량과 배출가스를 모두 줄이는 ‘엔진 다운사이징’ 흐름을 무색하게 한다.
토레스는 쌍용차의 마지막 제품이자 KG모빌리티의 첫 번째 차종이다. 소비자들이 제품 개선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이유다. 서비스 기간을 늘리고 디자인 공모전을 하며 전담 서비스 관리자를 지정한 것도 토레스가 그만큼 중요 제품이라는 방증이다.
KG모빌리티는 토레스 제품 개선을 아예 소비자에게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토레스=소비자가 만드는 차’로 육성하겠다는 각오다. 그래야 과거 쌍용차와 지금의 KG모빌리티 차이가 분명해진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소비자의 선택이 있어야 과거를 털어내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어서다. 고객을 기억하겠다는 쌍용차의 각오에 요즘 유행하는 말이 떠오른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중꺾마’ 말이다.
권용주 퓨처모빌리티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