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원지역의 대형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A씨는 수시로 불 끄는 작업을 중단하고 현장을 이탈해야 했다. 수일에 걸친 화재 진압 중 소방차 연료가 소진될 때마다 현장에서 50㎞ 떨어진 주유소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주유소에서 연료를 배달해주면 화재 진압에만 집중할 수 있을 터였지만 이동 주유를 금지하는 규제 탓에 불가능했다. 현장에 출동한 다른 3000여 대 소방차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국무조정실은 이 같은 화재 진압 등 재난 현장에서 불가피한 상황의 이동 주유를 전면 허용하는 내용 등을 담은 8건의 규제개혁신문고 운영 성과를 27일 발표했다. 작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신문고를 통해 접수한 2022건 중 개선된 801건에서 대표 성과를 추린 것이다.
정부는 재난 시 이동 주유 허용을 위해 법규를 손보기로 했다. 소방청은 위험물안전관리법 시행규칙을 올해 말까지 개정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규칙을 내년 상반기까지 고칠 계획이다. 법규가 개정되기 전까지는 탱크로리 등을 확보해 재난 현장에서 주유할 때 단속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동 주유를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2000가구 이상 아파트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유치원은 승인 결정이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규제를 개선하기로 했다. 앞서 교육청은 경기 광명시에 있는 2100가구 규모 아파트의 단지 내 유치원 설립을 승인했다가 4년 후 준공 단계에서 해당 지역에 유치원이 과잉 공급됐다는 이유로 승인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입주자들은 유치원 설립 무산에 항의하며 교육청에 집단 민원을 제기했고, 20억원에 유치원을 분양받은 B씨는 아파트 사업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국토교통부와 교육부는 관련 규정을 개정해 사업계획 승인 단계에서 유치원 설립을 승인하면 준공 단계에선 이전 승인 결정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취학 아동 수 감소 등이 예상될 경우엔 계획 단계에서 유치원 설치 의무를 면제하기로 했다.
정부는 국제 인증을 받은 유해화학물질 취급 반도체 생산설비(배관)는 국내 설치 검사를 면제하기로 했다. 반도체 생산설비 내 배관은 별도의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설치 검사가 필요한데, 장비 수입이 완제품이나 모듈 형태로 이뤄져 배관만 분해해 다시 인증받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로봇을 이용한 무인카페도 식품 자동판매기업으로 구분해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게 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달랐던 동물장묘시설 입주 기준은 상위법에 맞게 통일한다. 테마파크에 영화나 드라마 세트 등 촬영장 설치를 허용해 ‘한국판 유니버설스튜디오’가 나올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하기로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