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인 병원마저 거부하는 주취자를 대체 경찰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겁니까. 경찰이 택시이고, 파출소가 여관인가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자신을 경찰이라고 밝힌 A씨는 얼마 전 경찰청에서 개정한 '주취자 보호조치 체크리스트'와 관련, 일선 경찰관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개정된 리스트에는 경찰관이 주취자의 외관과 상태를 체크해 점수에 따라 △보호자 인계 등 귀가 조처 △경찰관서 보호조치 △병원 연계 조치 등 판단에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A씨는 "해당 리스트대로라면 (주취자를) 파출소에 강제로 끌고 가서 술 깰 때까지 강제로 감금해야 하는 것"이라며 "경찰이 택시이고, 파출소가 여관이냐"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은 의료기관이 아니다"라며 "119 구급대조차 이송거부 확인서를 받고 철수하고, 의료기관인 병원마저 거부하는 주취자를 대체 경찰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거냐"고 호소했다.
이어 "매트리스를 깔고, 골절 여부를 체크하고, (주취자가) 수시로 잘 자고 있는지, 혈색에는 이상이 없는지 상태 확인해보고 호흡곤란, 가슴 통증 여부 등을 확인하라는데, 우리가 의료진이냐"며 "파출소마다 차라리 간호사 한 명씩 배치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현행법상 강제로 (주취자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에, 119 구급대원분들도 병원 이송 거부하면 그대로 철수한다"라며 "병원 데리고 가도 주취자는 병원에서 안 받는데, 왜 파출소에서 주취자를 강제로 끌고 가야 하냐"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현재 경찰의 '주취자 대응 방안'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변수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 것에 따른 개선이라는 게 경찰청의 설명이다.
앞서 지난 1월 서울 강북경찰서는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 2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바 있다. 한파 속에 술에 취한 사람을 집 대문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일부 경찰관들은 개정된 리스트에 대해 "결국 술에 취한 사람 강제로 파출소 데려가고 감금해야 한다는 것이냐"는 반응을 보인다.
경기 고양시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 중인 권모 씨(32)는 "코로나가 완화된 탓인지 최근 들어 주취자들 신고가 더 많이 들어온다"며 "이번에 바뀐 주취자 관련 대응 개정으로, 우리 경찰들은 미래의 택시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고 토로했다.
충북 청주시의 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박모 씨(29)는 "며칠 전에도 새벽 시간대에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주취자로 2시간 넘게 골머리를 앓았다"며 "주취자를 챙기는 것 역시 경찰의 의무인 것을 알면서도, 어려움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화 등의 영향으로 경찰이 대응해야 하는 주취자 건수가 급증한 영향도 경찰들의 부담을 더한 모양새다.
지난달 국회 입법조사처가 공개한 '주취자 보호·관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청이 파악한 주취자 관련 신고 건수는 2021년 79만 1905건에서 지난해 97만 6392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기준 일평균 2675건의 주취자 관련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것.
이런 탓에 경찰만의 대응으로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청이 각 지방자치단체에 '주취자 구호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주취자 보호법 역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구호시설이 설치될 각 지자체에서는 '주취 업무까지 맡아야 하느냐'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15일 경기 가평군 공무원노동조합은 "안전을 위해 타인의 기본권을 제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지방공무원은 과연 안전할지 의문"이라며 "국가 본연의 의무는 때로는 기본권을 제한해야 하므로 국가기관을 통해 집행돼야만 한다"고 밝혔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