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중국 최대 국제 행사인 보아오포럼에 4년 만에 직접 참석한다. 이재용 삼성 회장에 이어 최 회장까지 중국을 찾는 데에는 미·중 갈등 한복판에 놓인 반도체 사업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27일 보아오포럼사무국에 따르면 올해 포럼은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에서 열린다.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의 올해 주제는 '불확실한 세계: 단결과 협력으로 도전을 맞이하고, 개방과 포용으로 발전을 촉진하자'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전면 오프라인 방식으로 열리는 게 특징이다.
보아오포럼은 코로나19 원년인 2020년 취소됐고, 2021년과 지난해에는 온라인 중심으로 열렸다. SK는 보아오포럼 주요 후원사 중 하나이며 최 회장은 이사다. 최 회장은 2019년까지는 직접, 2021년과 작년에는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최 회장은 29일 오전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성과측정' 세션에 나석권 SK사회적가치연구소 소장과 함께 토론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2060년 탄소중립'을 제시한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SK 등 한국 기업이 현장에서 펼치는 ESG 활동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최 회장이 4년 만에 중국을 찾는 것은 미·중 갈등의 정중앙에 놓인 반도체 사업의 활로를 찾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SK의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매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20%를 넘는다. 미국의 압박 속에 대미 투자를 늘리면서도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아오포럼은 28일부터 일정을 시작하지만 개막식은 30일에 열린다. 이 자리에서 중국 2인자이자 경제 사령탑인 리창 총리가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최 회장이 리 총리와 면담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보아오포럼 한국 측 인사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현 보아오포럼 이사장), 오영훈 제주지사 등이 있다. 반 전 총장은 29일 '안전과 발전의 균형' 세션에 토론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한편 리 총리는 이날 베이징에서 폐막한 중국고위층발전포럼 현장에서 이재용 회장,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아민 나세르 아람코 CEO 등 이번 포럼에 참석한 글로벌 기업 총수들과 순차 면담을 가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총리 면담은 중국 측이 참석자를 사전에 지정,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창은 시 주석의 견제에 힘을 쓰지 못한 리커창 전 총리와 달리 시 주석의 충복 출신으로 '실세 총리'로 통한다.
이달 출범한 시진핑 3기 집행부는 '대외 개방' 메시지를 지속 발신하고 있다. 시 주석은 CDF 축전을 통해 "제도적 개방을 안정적으로 확대해 각국과 기회를 공유하겠다"고 공언했다. 더 나은 기업 환경을 보장할 테니 중국에 투자해 달라는 호소였다. 리창 총리 역시 보아오포럼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이 3년 동안 지속된 제로 코로나 방역에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응하려면 외국의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