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냉전 생존법'은 한·미·일 협력뿐

입력 2023-03-26 18:06
수정 2023-03-27 00:20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 중동 등에서 전개된 공산 세력의 군사적 팽창에 직면한 미국은 세계 각지에 지역 동맹체를 결성해 대응했다.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남아의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 남태평양의 태평양안전보장조약(ANZUS), 중동의 중앙조약기구(CENTO)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작 6·25전쟁, 중국 내전, 대만 침공 등 공산 세력의 도전이 가장 치열했던 동북아 지역에는 그런 다자동맹체가 형성되지 못했고, 한·미 동맹, 미·일 동맹 등 1 대 1 동맹체제를 구축하는 데 그쳤다. 그 이유는 일본에 대한 한국의 강한 정서적 거부감 때문이었다.

1991년 소련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고 유럽 각국이 대거 군비 감축에 돌입했다. 이와 반대로 동북아에서는 북한 핵 문제의 대두로 안보 위기가 고조돼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보강하는 새로운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이 1990년 출범했다. 미국으로서야 세 나라가 NATO처럼 다자안보 동맹을 맺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겠지만, 한·일 관계의 현실을 감안해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토대로 한·일 두 나라를 점선으로 연결하는 형태의 느슨한 3자 안보협력체를 구축한 것이었다. 그 점선에 해당하는 쌍무적 한·일 안보협력은 2016년 체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런 불안정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은 냉전체제 종식 이후 약 30년간 유럽의 NATO에 비견할 만한 미국의 동북아 방어체제의 근간이 돼 왔다. 이는 당초 북한을 대상으로 한 협력체였으나, 2017년 중국의 대미 패권 도전 선언으로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한 이후로는 중국의 동아시아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협력체로서 그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2019년 3자 안보협력의 중요 연결고리인 지소미아의 종료를 일본에 통보했을 때 미국은 격한 반응을 보였고, 한국 정부는 이에 놀라 ‘종료 통보의 효력 정지’로 급선회하는 촌극을 빚었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시작된 지 5년이 넘은 지금, 안보는 물론 경제와 과학기술까지도 진영 대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냉전 시대가 뿌리내리고 있다.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활’을 실현하려고 동아시아 패권 장악을 노리는 중국 사이의 전략적 결속은 한반도 평화에도 중대한 도전을 제기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놀란 유럽 각국이 군비 증강을 서두르고 중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맞서 일본, 호주, 인도가 대대적 군사력 확장에 나선 지금 한·미·일 안보협력의 완전한 복원과 강화는 우리 안보를 위해 과거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신념을 공유하는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협력이 불가결한 조건이다. 북·중·러 삼각 체제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나, 북핵에 대응하는 미사일 방어망 강화를 위해서나, 중국이 퇴출되는 디커플링 세계에서 한국 기업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나, 일본은 미래 한국의 불가결한 협력 파트너다. 일본과의 과거사는 잊혀질 수 없다. 그러나 한국보다 더 처절한 과거사를 지닌 국가도, 더 험난한 적대관계의 역사를 지닌 국가도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 시대에 한국만 홀로 과거의 기억에 매몰돼 살 수는 없다. 한·미·일 3자 협력은 한·일 과거사의 강에 놓인 귀중한 징검다리다. 과거사 못지않게 중요한 우리의 미래 역사를 위해 이젠 그만 그 징검다리를 건너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