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 "출연 결정 매일 후회…중년 로맨스 연기하고파"

입력 2023-03-24 18:21
수정 2023-03-24 23:52
데뷔 34년차 배우 최민식(사진)은 주로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올드보이’(2003) ‘범죄와의 전쟁’(2012) ‘신세계’(2013)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 등이다. 지난해 12월 그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시리즈에 등장했을 때 화제가 됐던 이유이기도 한다. 1997~1998년 방영된 MBC ‘사랑과 이별’ 이후 24년 만의 드라마 복귀였다. 최민식이 주인공 차무식 역으로 출연한 16부작 시리즈 ‘카지노’가 지난 22일 종영했다. 모처럼 드라마에 출연한 기분은 어땠을까.

2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은 “(출연 결정을) 매일 후회했다”며 웃었다. “필리핀 현지에서 하루에 14개 신을 찍은 적도 있어요. 영화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분량이었죠. 너무 힘겨워하면서 연기했다는 게 아쉬웠는데 다행히 작품을 잘 봐주신 것 같아 정말 감사합니다.”

‘카지노’의 흥행 덕분에 디즈니플러스의 구독자는 크게 늘었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디즈니플러스 앱 설치자는 전년 동기(335만 명) 대비 51% 늘어나 505만 명에 달했다. 드라마가 처음부터 인기를 끈 건 아니다. 차무식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시즌1(1~8회)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카지노 전설이 된 차무식이 위기를 겪고 인생의 마지막 베팅을 하는 이야기가 그려진 시즌2(8~16회)에 이르러서 관심이 급증했다.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너무 재미없더라’라는 얘기까지 듣고는 ‘조금만 참으면 될 텐데’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했어요. 그래도 초연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가 차무식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건 ‘평범함’이었다. 그는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 지으려 하지 않았다”며 “평범한 사람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데 돈과 권력을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늪에 빠지게 되는 상황, 그리고 인간의 다중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회에서 차무식이 죽음에 이르러 시청자 사이에서 논쟁이 일기도 했다. 최민식은 이를 두고 작품 초반에 나온 ‘화무십일홍(열흘 붉은 꽃은 없다)’이라는 고사성어를 언급했다. “꽃잎이 떨어지듯 차무식이 퇴장한 거죠. 욕망으로 치닫던 사람은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구질구질한 서사나 마무리를 하는 것보다 화끈하게 셔터를 내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요즘 최민식은 매니저와 기획사 없이 직접 운전하고 다니며 활동한다. “차무식이나 저나 인생이 정신없이 흘러간 점은 비슷한 것 같아요. ‘내가 잘 흘러가고 있나’ 멈춰서서 생각할 수 있는 브레이크가 필요한 법이잖아요. 차무식에겐 브레이크가 없었지만 저는 그렇게 혼자 생각할 여유도 가지며 인생의 브레이크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 봤지만 해보고 싶은 역할도 많다고 했다. “다음엔 중년의 로맨스를 연기하고 싶어요. 감히 꽃 피울 엄두도 나지 않는, 절제하기에 더 짠하고 아픈 사랑 이야기요. 요새는 만날 누군가 죽이는 작품이 많은데, 단편소설 같은 휴먼 드라마도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