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내연기관 유지하되 사용은 합성연료만
수소 기반의 액체 합성연료인 'e-퓨얼'이 내연기관을 살려낼 전망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35년 내연기관 폐지에서 한발 물러나 합성연료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EU는 합성연료만 사용하는 자동차의 기술 적용도 요구하기로 했다. 현재 시점에선 내연기관에 화석연료와 합성연료의 병행 사용이 가능한 만큼 연료 인식 장치의 전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합성연료가 아닌 화석연료가 유입되면 엔진 작동이 멈추도록 설계하라는 것이다. 이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제안은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EU가 합성연료를 수용키로 한 배경은 독일의 주장대로 '합성연료' 또한 에너지는 수소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다.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태양광 및 풍력 등으로 생산한 수소와 합성시키는 만큼 탄소 배출을 늘리지 않기 때문이다. 연소 과정에서 수소를 태우면 이산화탄소가 나오지만 다시 포집해 연료 합성에 사용, '탄소 중립'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합성연료는 아직 생산 초기 단계에서 생산량이 많지 않고 가격도 비싸다. 그러나 독일 등은 칠레에 가동되는 공장 외에 2025년 이후 글로벌 곳곳에 공장이 계획대로 들어서면 생산량이 늘고 가격은 내려갈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 합성연료 사용에 적극적인 포르쉐 등은 현재 ℓ당 10달러 가량의 가격은 10년 이내에 2달러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미래의 새로운 에너지를 발굴하려는 액슨모빌 등 거대 정유기업도 합성석유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어 생산량은 빨리 늘어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내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최근 글로벌 합성연료의 모든 계획이 진행돼도 이들의 비중은 항공, 운송, 화학 산업의 10%에 머문다는 예측을 내놨다. 반면 독일, 이탈리아 등은 합성연료의 저장성이 수소 및 전기보다 월등히 뛰어나 궁극적으로는 배터리의 경쟁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동 수단의 배출가스를 줄이는 것이어서 미래 사회에는 합성연료, 배터리, 수소연료전지 등이 공존한다는 전망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합성연료 사용 전제로 내연기관 유지를 예고하자 시장의 관심은 테슬라 등의 배터리 전기차 제조사로 쏠리고 있다. 배터리보다 합성연료 생산 장벽이 낮아 글로벌 여러 국가의 선택도 늘어날 수 있어서다. 이 경우 배터리 전기차의 확산세는 주춤할 수도 있다. 게다가 배터리 전기차에 사용하는 전기의 발전 방식이 여전히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합성연료에 힘을 보태는 대목이다. 따라서 독일은 배터리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는 것처럼 합성연료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동력을 만드는 기계 장치가 아니라 동력원으로 분류되는 에너지의 친환경성에 있어서다.
사실 합성연료는 역사가 꽤 오래된 에너지다. 1920년대 독일의 화학자 프란츠 피셔와 한스 트롭이 석탄을 액체로 전환하는 공정 개발에 성공했고 실제 이렇게 만들어진 연료는 2차 대전 때 독일 항공기와 탱크의 연료로 사용됐다. 전쟁 이후 석유에 밀려 사라졌지만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석탄을 수출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해당 기술을 도입, 수송 에너지로 석탄액화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한때 국내에 세녹스2로 도입되려다 실패했던 연료가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석탄액화연료이기도 했다. 해당 공정을 다시 꺼내 수소와 이산화탄소 합성에 성공한 에너지가 합성연료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제안을 한 만큼 정상회의에서 합성연료 사용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래 친환경 에너지로 합성연료, 전기, 수소의 선의적 경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여전히 수송 부문의 절대 에너지 강자는 석유지만 관심은 셋 가운데 누가 먼저 석유의 지배력을 빼앗아 올 것인가에 모아지는 중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