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잔 박탈) 개정 법률이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을 놓고 장외전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당했지만, 법제사법위원장과 국회의장의 법률 가결 선포 행위는 유효하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음주하고 운전했는데, 음주운전에 해당 안 된다는 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더불어민주당은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에게 정치적 책임을 따져 묻고 있다.與 "음주하고 운전했는데 음주운전 아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3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음주하고 운전했는데, 음주운전에 해당 안 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가 어딨느냐"며 "황당한 궤변의 극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짓말을 했는데 허위사실 유포는 아니라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대법원판결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며 "헌재가 아니라 정치재판소 같다"고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헌법 및 국회법 위반이 없기 때문에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지 않았다고 판결하는, '형식적으로 맞으니까 위헌이 아니다'라는 헌법재판소는 필요 없다"며 "특히 청구인들이 법사위 의결 이후 본회의에 의결 금지를 고하는 가처분신청을 했을 때 헌재가 가처분 결정만 했다면 본회의에서 쟁점 법률안이 가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헌재재판소 재판관 5명이 보여주는 이 편향성은 앞으로 대민 헌재 역사에서 오욕으로 분명히 남는다고 확신한다"며 "위장 탈당에 이어 법사위원장이 안건조정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법안을 가결했기에 그것이 인정된다면 법사위원장의 가결 결의도 무효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기각 결정이 난 데 대해 심히 유감"이라고 했다.野 "'쿠데타적 발상' 한동훈 사퇴하라"
민주당은 헌재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을 향해 정치적 책임을 따져 물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 장관은 법치를 흔들며 심각한 국가 혼란을 자초했다. 지금 당장 책임지고 사퇴를 촉구한다"면서 "민주당은 국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검찰개혁 입법을 추진했는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은 오로지 '검찰 독재정권'을 위해 국민 뜻을 정면으로 부정했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한 장관은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해놓고, 그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입법 취지에 반하는 불법 시행령으로 검찰 수사 범위를 모조리 되돌렸다"면서 "반헌법적인 불법 시행령으로 입법권을 무력화하고, 삼권분립을 무너뜨렸다"고 했다. 그는 이번 헌재 판단을 동력으로 삼아 한국형 FBI인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등 검찰 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도 내비쳤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한 장관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검찰이 국가권력을 잡아 민주주의의 근본원리인 견제와 균형의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있는 중에 드디어 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여지를 보게 한 판결"이라며 "한 장관은 쿠데타적 발상을 거두어들이고 법질서를 어지럽히고 국회 입법권을 침해한 것에 대한 대국민 사죄를 해야 한다"고 했다."'검수완박' 입법, 심의·표결권 침해…무효는 아냐"
헌재는 이날 한 장관과 검사 6명이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각하했다. 각하 판단을 내린 다수 의견(유남석 소장·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검수완박 입법은) 국회가 입법사항인 수사권·소추권의 일부를 행정부에 속하는 국가기관 사이에서 조정·배분하도록 개정한 것"이라면서 "검사들의 헌법상 권한 침해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전주혜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청구는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일부 인용했다. 헌재는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 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했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이 법을 가결·선포한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는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기각했다. 다수 의견은 "청구인들은 모두 본회의에 출석해 법률안 심의·표결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았고, 실제 출석해 개정법률안 및 수정안에 대한 법률안 심의·표결에 참여했다"고 했다. 한 장관은 이날 헌재 선고 뒤 정부 과천청사에서 취재진을 만나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헌법적인 질문에 대해 실질적인 답을 듣지 못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