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는 이제 망했어!”
2010년 6월 29일. ‘테슬라모터스’라는 전기차 스타트업이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 1956년 미국 포드 이후 첫 자동차 기업공개였다. 17달러로 시작한 공모가는 하루 만에 41% 치솟았다. 그날 밤 프리몬트 공장에선 자축의 파티가 열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샴페인 잔을 높이 들었다. “테슬라 비판 세력은 매번 쓴맛을 볼 겁니다” 달콤한 순간은 잠시뿐. 곧 ‘생산 지옥’의 현실이 닥쳤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는 2003년 첫 설립부터 2020년대 중국 진출까지 테슬라 비사(?史)를 다룬다. 테슬라 관련 대표 서적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가 ‘머스크 신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의 저자 팀 히긴스는 창업자에 가려진 ‘테슬라 사람들’을 조명했다. 책은 3부로 구성됐다. △더없이 비싼 자동차 △최고의 자동차 △모두를 위한 자동차로 각각 △초기 로드스터 △모델S △모델3를 지칭한다.
머스크는 2006년 장기 청사진 ‘마스터플랜’을 통해 초기엔 럭셔리카, 이후 고급 차와 대중 차 순으로 전기차를 개발하겠다고 밝힌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첫 모델인 로드스터 개발비만 2004년 계획했던 2500만달러를 넘어 2008년 1억4000만달러에 이르렀다. 꿈이 커질수록 대량생산에 따른 비용과 시간 압박이 테슬라의 목을 죄었다. 테슬라는 2020년 이전까지 사실상 적자기업이었다. 공매도 세력은 ‘언제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품’으로 봤다. 머스크는 투자자와 정부를 쫓아다니며 돈을 구해야 했다.
테슬라는 개발비 마련을 위해 신모델을 선공개하고 사전예약금을 받았다. 그러나 양산은 고사하고 모델S 등 시제품도 발표 전날 밤에야 간신히 완성했다. 고객에게 약속한 차량 인도 시기가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다. 머스크의 시시콜콜한 간섭도 현장 엔지니어들에겐 부담이었다. 그는 수년 전 정해놓은 차량 디자인 및 기능을 수시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시간이 없다는 해명엔 불호령이 떨어졌다.
수많은 직원이 압박을 못 견디고 테슬라를 떠났다. 영국차 로터스 출신 수석 엔지니어 피터 롤린슨은 기술 이견으로 머스크와 대판 싸우곤 했다. 멱살잡이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모델X ‘걸 윙 도어’를 수정하라는 머스크의 명령에 롤린슨은 폭발하고 말았다. 그가 테슬라를 떠나겠다고 통보하자 머스크는 노발대발했다. 결국 그의 측근까지 해고했다.
2016년 공개한 모델3는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다. 1년 만에 사전 예약 50만대에 달했다. 문제는 생산이었다. 머스크는 일주일에 5000대 생산 목표를 내걸었다. 주주들에겐 2018년 50만대를 제작하겠다고 공지했다. 터무니없는 발표에 공장 관리자들은 아연실색했다. 머스크에게 ‘못하겠다’고 말한 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해고됐다.
자동화를 위해 대량으로 들여온 로봇 라인이 말썽이었다. 공장 옆에 대형 천막을 치고 수작업으로 생산을 병행했다. 머스크는 아예 공장 바닥에서 잠을 자며 작업을 독려했다. 2018년 여름, 기어이 주당 5000대 생산을 달성했다.
테슬라 직원들이 살인적 업무 강도를 버틴 것은 언젠가 주가가 급등해 대박이 날 거란 희망 덕분이었다. 채용 담당자 릭 아발로스는 스톡옵션을 내걸고 인재를 영입했다. 가정불화로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보며 아발로스는 죄인이 된 듯 마음이 아팠다. 2013년 모델S가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되고 회사는 1분기 ‘깜짝 흑자’를 냈다.
연일 급등한 주가는 그가 약속한 50달러를 돌파했다. 아발로스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결국 해냈구나. 내가 영입한 사람들이 회사가 망해서 실직할 일은 없겠어”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서평은 ‘테슬람이 간다’ 기사를 연재하는 백수전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연재 기사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