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관련한 경제 용어 중에는 동물이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탄광 속에 유해 가스가 차면 광부들이 안고 들어간 카나리아가 울음으로 경고하듯 ‘탄광 속 카나리아’는 위기 경보 시스템이다. 채무 보증에 대한 보험료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은 금융위기에 대한 탄광 속 카나리아로 통한다.
‘회색 코뿔소’는 계속된 경고로 이미 노출돼 있지만, 코뿔소가 달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간과하는 위험을 뜻한다. 이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나 시한폭탄 같은 가계부채 리스크가 이런 유형이다. ‘블랙스완’은 9·11테러나 코로나 사태처럼 전혀 예기치 못한 극도의 돌발 위기 상황을 의미한다. ‘방 안의 코끼리’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위기지만 말하기를 꺼리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민연금 개혁은 ‘방 안의 코끼리’였다.
위기는 상호작용으로 인한 것이기에 ‘모멘트’가 붙는 경제 용어도 적잖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에서 유래한 ‘리먼 모멘트’는 하나의 대형 기관이나 국가에서 발생한 위기가 다른 나라로 확산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뜻한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는 이번 크레디트스위스은행 파산 사태가 리먼 모멘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유력 애널리스트 보고서로 ‘민스키 모멘트’가 다시 회자하고 있다. 민스키 모멘트는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자산을 늘려온 채무자가 상환능력이 악화하면서 공포를 느껴 건전 자산까지 매도해 자산가치 폭락과 금융위기를 불러오는 시기를 의미한다. 은행들의 연쇄 도산, 지정학적 리스크에 금융정책 불확실성까지 겹쳐 민스키 모멘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민스키 모멘트는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의 한 축이다. 민스키는 경제 주체들의 비합리적 판단과 행동으로 자산 거품과 붕괴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공포의 숙주는 공포’라고 하듯, 탐욕이 공포로 전환되는 시점인 민스키 모멘트의 원동력은 공포다. 민스키의 말대로 자산시장은 공포에서 벗어나 다시 탐욕의 시기를 맞을 것이다. 공포가 모든 것을 삼키는 지금은 일단 버텨야 한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