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英 팝의 아이콘 '해리'…무대매너 100점, 가창력은 '글쎄'

입력 2023-03-21 18:25
수정 2023-04-29 15:53


영국 5인조 그룹 원디렉션 출신인 해리 스타일스(29·사진)의 첫 내한 공연이 열린 지난 20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KSPO돔.

1만5000석이 일찌감치 매진된 이 공연은 몇 달째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가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 데다 지난달 그래미 어워즈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비싼 티켓값(P석 기준 19만8000원)은 공연 직전 중고거래 시장에서 50만원 이상으로 훌쩍 뛰었다. 공연은 오후 8시에 시작했지만 무대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으려는 스탠딩석 예매자들은 오후 2시부터 긴 줄을 만들었다.




중후한 중저음에 부드러운 고음 음색을 두루 갖춘 그의 라이브 실력은 어떨지, 아이돌 그룹 출신의 ‘성공적 홀로서기’를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관중은 숨죽인 채 그를 기다렸다.

보라색과 연두색 줄무늬에 몸에 딱 붙는 민소매 점프슈트를 입고 나온 그는 호소력 짙은 발라드부터 에너지 넘치는 펑크록까지 90분간 18곡을 소화했다. 13년 동안 무대를 휘저은 ‘업력’을 과시하듯 재치 있는 입담과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밝은 음색의 ‘뮤직 포 어 스시 레스토랑’으로 공연을 시작한 그는 ‘골든’ ‘어도어 유’ 등 리드미컬한 곡을 잇달아 불렀다. 곡과 곡 사이엔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생일을 맞이한 관객에게 다 같이 생일 축하곡을 한국어와 영어로 불러주자고 하는가 하면, 관객이 건넨 태극기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스타일스는 미리 준비한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에 와서 행복해요” “감사합니다”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100점짜리 무대 매너와 달리 가창력엔 갸우뚱하는 관객이 많았다. 특히 지정석에선 중저음의 드럼 비트와 베이스기타 소리가 뭉개진 채 들렸고, 보컬의 고음도 여러 차례 ‘묵음’이 됐다.

기술팀의 문제였는지 스타일스도 여러 차례 마이크 줄과 귓속의 이어폰을 매만지며 체크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곡 중 하나인 ‘사인 오브 더 타임스’에선 고음 부분을 저음으로 불렀고, 후렴의 하이라이트를 관객에게 대신 부르게 했다.



세션과의 좋은 호흡 덕분에 부족한 부분을 만회했다. 6명의 세션 중 3명이 여성이었다. 드럼과 기타, 코러스가 여성 멤버로 일반 밴드에선 보기 드문 구성이었고, 퍼커셔니스트로 나온 폴리 러브조이는 90분 내내 화려한 발차기 퍼포먼스와 춤 실력을 뽐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평소 성소수자와 여성 인권 등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온 스타일스다운 멤버 구성이었다.

1시간30분 동안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낸 스타일스는 다음을 기약했다. 13년간 이 순간을 바라온 팬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이번 공연이 처음일 수는 있지만, 마지막은 아닐 거예요.”

이선아/김보라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