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74)는 역대 최장기 이스라엘 재임 총리이자 우파의 상징적 인물이다. 유대 민족주의(시오니즘)와 우파 정당들을 권력 기반으로 삼아온 그는 마흔여섯 살이던 1996년 최연소 총리로 등극해 3년간 재임했다. 이후 10년 만인 2009년 재집권해 12년 이상 나라를 이끌었고, 2021년 6월 실각했지만 지난해 11월 조기 선거에서 승리해 또다시 총리가 됐다.
네타냐후 정부가 연초부터 추진 중인 사법개혁안 때문에 전국적 시위 사태가 벌어져 이스라엘이 난리다. 내각 출범 1주일 만인 1월 4일 발표한 개혁안은 개악에 가깝다. 대법원이 내린 위헌 결정을 의회인 크네세트의 단순 과반수(120석 중 61석) 동의로 뒤집을 수 있고, 의회가 만든 법이 연성헌법인 ‘이스라엘 기본법’에 부합하는지 심사하는 대법원의 권한도 없앴다. 대법관추천위원회는 내각과 여당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했다.
좌파에 경도된 법원을 바로잡고 비대한 사법부 권한을 정비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야당은 물론 각계각층 시민들이 “사법개혁이 아니라 ‘사법쿠데타’”라며 지난 주말까지 11주째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인구가 900만 명을 조금 넘는데 50만 명(주최 측 추산)이 거리로 나섰다니 시민들의 분노지수를 짐작할 만하다. 연성헌법은 일반 법률처럼 의회의 과반수 동의로 개정할 수 있으므로 대법원의 사법심사가 폭정을 막는 유일한 장치인데 이를 무력화하면 독재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사법부 독립성 훼손, 부패 조장, 소수자 권리 후퇴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도 네타냐후 총리는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면서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명목상 국가원수인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63)의 중재안도 거부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진심 어린 우려와 충고도, 지난 19일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화해와 양보 권고도 별무소용이다. 2019년 뇌물 등 부패 혐의로 기소된 네타냐후 총리를 위한 ‘방탄용 입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프랑스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한데 지도자의 뚝심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닌 모양이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