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화의 변동성이 크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크레디트스위스(CS) 유동성 부족 사태 등 대외 여건이 불안할 때마다 흔들려 원화의 체감 변동성은 더 심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인상한 지난 1년 동안 원화의 변동성은 하루평균 0.53%에 달했다. 달러당 1300원을 기준으로 한다면 7원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두 배, 베트남 동화와 비교해선 무려 다섯 배에 달해 원화가 이류 통화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환율은 다른 교역국과의 통화 교환 비율을 말한다. 지난 1년간 Fed의 금리 인상 과정은 1913년 설립 후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큰 폭으로 올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숨 가쁘고 거칠었다.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이 변화무쌍한 Fed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원화 변동성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내부 여건도 문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 무역액, 시가총액 등으로 본 우리의 경제 위상은 세계 10위에 해당할 만큼 대국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수출 비중이 40%를 웃돌 만큼 내수시장이 육성되지 않아 대외 여건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수출부터 살려야 한다는 정책당국의 인식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외경제 위상도 원화의 변동성을 심하게 하는 요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분류기준인 1인당 소득으로 볼 때 우리는 3만달러가 넘어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이에 비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분류기준상 우리는 선진국 예비 명단에서도 탈락해 신흥국이다.
한국처럼 선진국과 신흥국 중간자 위치에 있는 국가는 대전환기에 쏠림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외국인 자금 여건이 좋을 때는 선진국 대우를 받아 대거 유입되다가 나쁠 때는 신흥국으로 전락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어려움이 닥친다. ‘경기 순응성’과 ‘금융변수 변동성’이 심해진다는 의미다. 원화의 변동성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미국 경제 여건부터 따져보면 지난해 말에 비해 달러 강세 요인은 강해졌다. 펀더멘털 면에서 미국 경제는 ‘노 랜딩’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견실하다. 통화정책 면에선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차 불거지면서 방향 전환(피벗) 기대가 약화하고 있다.
달러인덱스 구성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 경제는 지난겨울 이상고온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락하면서 회복세가 뚜렷하다. Fed는 올해 첫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한 단계 올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0.5%포인트, 두 단계 인상해 금리 차가 축소됐다.
우리 경제 여건은 더 안 좋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4%로 역성장한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타기팅 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 지속되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도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228억달러에 달한 가운데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섰다.
“원화가 베트남 동화보다 못하다”는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 통화정책부터 변경해야 한다. 더는 우리 내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Fed를 따라간다는 인상을 주는 식의 통화정책을 추진해서는 곤란하다. 최근 4대 거시경제 목표 간 상충 관계가 뚜렷한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보다 성장률과 경상수지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위상에 맞게 내수시장을 육성해야 한다. MSCI가 지적하는 요인을 개선해 포트폴리오 위상도 최소한 선진국 예비명단에는 진입할 필요가 있다. 부패를 척결해 소프트웨어 위상도 올려야 한다. 금융사고를 저지른 책임자가 최고경영자(CEO)로 버티고 정부의 각종 기금 운용을 그 CEO가 있는 금융사에 맡겨서는 곤란하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원화 변동성이 심해진 틈을 타 다시 거론되는 리디노미네이션이다. 이는 화폐 가치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거래단위를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험국의 사례를 보면 상황 논리에 밀려 추진하다간 모두 실패로 끝나고 엄청난 후폭풍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