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산업·통상·안보 분야의 중국 견제 카드를 쏟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반도체법상 보조금 지급 조건 발표로 한국의 주력 산업이자 대중(對中) 수출 비중이 40%에 가까운 반도체업계의 중국 사업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무역적자, 경상적자, 고환율 시기에 설상가상이다. 국가 안보의 대전제는 한·미 동맹이지만 양국 간 경제적 이해충돌은 상존했다. 동맹국 상호 간의 이해와 설득, 조율이 절실하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주도하며 매년 중국인 3000명의 미국 유학을 결정했을 때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10만 명씩 보내라”고 말할 정도로 과학기술 습득의 문을 열어줬다. 미국은 국제 자유무역 질서에 중국을 편입함으로써 소련을 붕괴시키고 냉전에서 승리했다. 유럽이 1992년 2월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체결해 유럽연합을 출범시키자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보다 3개월 앞서 중국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시켜 대응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2001년 중국이 사회주의 경제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지원함으로써 중국 부상의 산파역을 담당했다.
판을 바꾼 것은 2012년 시진핑의 등장이다. 시 주석은 전임자들과 달리 중국의 자금력과 세계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일대일로 사업을 기치로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 중남미에서 기존 국제개발금융 체제에 도전했다. ‘호랑이를 키운 꼴’인 미국의 선택지는 네 가지였다. 첫째, 중국의 경제발전은 종국적으로 사회·정치 변화를 가져올 테니 기다리든지, 둘째 중국과 ‘투톱’(G2)을 이뤄 학습기를 통한 순조로운 패권 이행을 준비하든지, 셋째 혁신을 가속화해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든지, 넷째 중국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국제 정치·경제적으로 억제하든지였다.
이 중 첫 두 대안은 ‘미국은 쇠퇴하는가’ ‘중국은 패권 후계자로서 적합한가’라는 질문에 모두 긍정적인 답이 필요했다. 그러나 중국은 급성장하는 속에서도 미국의 기대와 달리 공산당 독재를 굳혀갔고 군비를 확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택한 전략은 세 번째, 즉 자유무역 질서를 유지한 채 중국과 경쟁해 이기는 것으로, 중국을 배제한 APEC 내 12개국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타결시켰다. 그러나 자유무역이 미국 내 소외계층을 양산한다는 점을 부각해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TPP를 탈퇴했고, 미국에 무역적자를 초래한 중국 등 주요 무역 상대국을 무역 제재와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으로 압박했다.
트럼프의 대안이 어중간했다면 바이든의 선택은 마지막 남은 야심적인 중국 성장 억제 카드였다. 즉, 기술 보유국과 중국 간의 연결고리를 제한하고 미국 내 제조업을 부활시키며 중국 견제 안보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바마 정부는 왜 이 카드를 택하지 않았는지 기억해야 한다. 즉,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중국 경제성장의 편익을 누려온 미국 기업들은 물론 아시아 동맹국들이 인센티브 없이 미국의 대중 봉쇄에 동참할지 회의적이었고, 중국의 자생적 성장 가능성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동맹국의 경제적 희생이 미국의 국익에 절대 이롭지 않다는 논리 아래에서 인위적인 공급망 재편이 초래할 경제적 비용 보상에 대해 미국과 토론해야 한다. 세계무역 질서의 파행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미래 전략에 대한 동맹국 간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