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우크라이나 아동들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전쟁범죄의 책임을 물었다. 로이터통신은 “재직 중인 국가원수가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것은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이어 세 번째”라고 보도했다. 국제사회에서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아동 강제이주 법적 책임”ICC 전심재판부는 지난 17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러시아로 아동들을 불법 이주시킨 전쟁범죄에 책임이 있다고 볼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같은 범죄는 최소 지난해 2월 24일(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푸틴은 해당 행위를 저지른 민간인 및 군 하급자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날 마리야 리보바벨로바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담당 위원에 대해서도 푸틴 대통령과 동일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번 수사를 총괄하는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최소 수백 명의 우크라이나 아동이 보육원과 아동보호시설에서 납치돼 러시아에 강제로 이주됐으며, 이 중 다수는 러시아 가정에 입양됐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령으로 우크라이나 아동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신속히 부여해 러시아 가정이 쉽게 입양할 수 있도록 했다”며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했다.
ICC가 러시아 최고위급 인사를 피의자로 공식 지목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푸틴은 명백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며 ICC의 결정을 환영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실제로 ICC 법정에 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러시아 정부의 협조 없이는 푸틴 대통령을 체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016년 ICC에서 탈퇴해 협조 의무가 없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ICC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결정도 효력이 없다”며 “터무니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입지는 더 좁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ICC 123개 회원국은 피의자 구금 및 이송 의무가 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이들 국가에 발을 디딜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이 방문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의 동맹국으로 제한될 것이란 관측이다. 푸틴, 크림반도 깜짝 방문푸틴 대통령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다음날인 18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강제합병한 크림반도에 깜짝 모습을 나타냈다. 크림반도 병합 9주년(2014년 3월 18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푸틴 대통령은 당초 러시아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서남부에 있는 크림반도 최대 도시인 세바스토폴까지 직접 차를 운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임명한 미하일 라즈보자예프 세바스토폴 시장의 안내를 받으며 이날 개교한 어린이센터와 미술학교를 둘러봤다. ICC의 체포영장 발부에도 보란 듯이 어린이 관련 시설을 찾은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의) 위협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며 크림반도 사수 의지를 내비쳤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우크라이나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에 있는 군 사령부를 찾아 전황을 보고받았다. 이어 작년 5월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마리우폴도 같은 날 방문해 주민들과 대화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은 전했다.
러시아 정부는 병력 보강을 위한 징집 연령 조정에 나섰다. 18일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 하원(두마)은 최근 징집 대상 연령을 현행 18∼27세에서 21∼30세로 높이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18~21세 러시아 남성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징집 면제를 주장하자 대상 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