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밀려 우왕좌왕…"週 최대 52→59시간이 무슨 개혁인가"

입력 2023-03-16 18:31
수정 2023-03-24 18:56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최대)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밝히면서 주 최대 근로시간은 당초 정부안인 ‘69시간’에서 ‘59시간 이하’로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이는 이도 저도 아니란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기본 40시간+연장 12시간)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바꿔 바쁠 때 몰아서 일하는 대신 총근로시간은 줄이는 나름 합리적인 개혁안을 내놓고도 전략 부재로 우왕좌왕하다가 코너에 몰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하면 주 52시간제 개혁안이 유야무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현 탄력근로제만 못할 수도 당장 정부의 개혁안에 반대하는 측은 ‘여전히 장시간 근로’라고 반발한다. MZ노조협의체(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유준환 의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69시간이든 60시간이든 (주 최대 근로) 시간이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다”며 “60시간으로 제한한다고 해서 공짜야근이 종식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단순히 주 최대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해서 MZ세대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기업 등 정부안에 찬성하는 측에선 주 52시간에서 59시간으로 7시간 늘리는 걸 ‘근로시간 개혁’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비판한다. 소모적 논란에 비해 실제 바뀌는 건 미미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지금 시행 중인 탄력근로제만도 못하다고 지적했다. 탄력근로제는 특정 주의 법정근로시간(40시간)을 52시간까지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의 법정근로시간을 줄여 최장 6개월간 주당 평균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맞추는 제도다. 근로기준법 51조의 2에 따라 노사가 합의하면 도입할 수 있다. 노사가 3개월간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 근로자는 최대 6주까지는 주 64시간(법정근로시간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주 최대 근로시간을 59시간 이하로 낮출 바에야 탄력근로제 문턱을 낮추는 게 더 낫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력근로제는 문재인 정부 때 확대됐기 때문에 정부·여당 입장에선 법 개정 부담도 적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발언에서 ‘주 60시간’이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도 논란이다. 대통령실도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주 52시간’을 넘기면 장시간 근로라는 ‘숫자 프레임’에 갇힌 상황에서 윤 대통령 지시대로 주 최대 60시간 아래로 ‘캡’을 씌워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치밀하지 못한 접근주 52시간제 개혁안이 이처럼 뒤틀리면서 정부가 장시간 근로 우려를 불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짜 야근 단속’ ‘근로시간 개편 시 노사 합의 절차 도입’ 등 근로자의 건강권·선택권 보장을 담보하는 개편안의 취지보다 근로시간 유연화부터 강조한 탓에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MZ세대가 “공짜 야근 등 포괄임금 오남용 대책이 먼저”라며 반발했지만 정부가 그런 측면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주당 최대 69시간 근로에 대해서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초 ‘주당 최대 69시간 근로가 가능하다’는 보도에 대해 “그렇게 언급한 적 없다”거나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 제도 취지와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지난 6일 입법예고안에선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며 근로일간 11시간 휴식 보장 시 주 69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고 했다. 고용부가 주 최대 69시간의 대안으로 ‘11시간 휴식이 없을 경우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악수’가 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노동계는 물론 MZ세대마저 ‘11시간 연속 휴식’을 장시간 근로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인식해 왔다는 점에서다.

대통령실이 “고용부로부터 근로시간에 대해 제대로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한 것도 책임 떠넘기기로 비쳤다. 다수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법을 대통령실이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여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 배상 문제나 노조 회계투명성 의제와 달리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서는 옳은 방향인지 확신이 없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