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경제위기에 대비해 쌓아야 하는 자본 규모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마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건전성 규제를 한층 강화하기로 하면서다. 고금리를 타고 역대급 이자수익을 거둔 은행이 임직원에게 억대 성과급을 지급해 ‘돈 잔치’ 논란이 거센 가운데 은행의 보수 산정 체계를 공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슬금슬금 오르는 은행 연체율금융위원회는 지난 15일 제3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회의를 열고 은행권 손실 흡수 능력 제고 방안을 논의했다. 우선 2016년 국내에 도입됐지만 아직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제도를 오는 2~3분기부터 가동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은 은행이 신용 팽창기에 자본을 최대 2.5% 추가 적립하도록 하고, 신용 경색이 발생하면 자본 적립 의무를 완화하는 제도다.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 도입도 추진한다. 은행들은 금리나 환율 등 측면에서의 위기 상황을 가정해 손실 흡수 능력을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금융당국이 테스트 결과가 미흡한 은행에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향후 은행업 감독규정을 바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추가 자본 적립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를 운영하는 미국은 작년 30여 개 은행에 2.5~9%의 추가 자본 적립 의무를 부여했다.
작년 9월 기준 국내 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2.26%로 규제비율(7~8%)을 웃돌긴 하지만 채권 평가손실 등의 영향으로 2021년 말(12.99%)에 비해선 하락했다. 금리 급등으로 은행 연체율도 2021년 말 0.21%에서 작년 말 0.25%로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은행들이 자본 확충에 나서면 배당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스톡옵션으로 성과급 지급”은행권의 성과급 산정 체계도 수술대에 오른다. 은행이 막대한 수익을 낸 데는 임직원의 노력보다 금리 상승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고, 성과급이 사실상 고정급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게 금융위의 문제의식이다. 실무작업반은 단기 수익성 위주인 성과급 산정 구조에서 건전성 등 중장기 지표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금융위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임원의 단기성과급을 산정할 때 수익성에 가장 높은 배점(32~45%)을 적용하고 있는데, 외국계 은행의 수익성지표 배점은 30%를 밑돈다. 성과급을 한 번에 주지 말고 이연 지급하고, 지급 수단을 현금에서 주식이나 스톡옵션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무작업반은 보수체계의 투명한 공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희망퇴직금과 관련해 주주총회에서 주주 평가를 받도록 하는 ‘세이온페이(Say-On-Pay)’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현재는 노사 합의나 은행장 결정을 통해 희망퇴직금을 주고 있다. 작년 5대 은행 희망퇴직자 1인당 평균 퇴직금은 5억4000만원에 달했다. 해외 금융사처럼 은행장 등 임원의 성과를 평가하는 보수위원회의 안건을 공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