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계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의 원인을 두고 논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이번 사태와 무관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공화당에서 제기한 '워크(WOKE·깨어있는)' 운동이 SVB의 파산을 초래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공화당 의원들이 잇따라 SVB 파산 원인을 ESG와 다양성, 형평성, 포용(DEI) 등 진보 의제와 엮으며 민주당에 대한 공세를 펼쳐서다.
제임스 코머 공화당 의원은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SVB는 ESG 투자 기조를 추구하는 가장 '깨어 있는' 은행이었다"고 비판했다.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주지사(공화당)는 "SVB는 DEI 등 정치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은행의 핵심 임무에 많이 비껴간 모습이다"라고 공격했다.
공화당의 비판과 달리 SVB 파산과 DEI, ESG와는 거리가 있다. 이번 SVB 파산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급격한 긴축에 따른 결과다. 자금 경색에 빠진 IT업체가 경쟁적으로 예금 인출을 요구하자 주로 국채로 보유한 자산을 팔아 대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년 초 연 1%대였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이달 초 연 4%를 넘겼다. 안전자산인 국채에서 손실을 보고 주가가 폭락하자 뱅크런이 발생했고 이는 은행 도산으로 이어졌다.
이타이 골드스타인 와튼스쿨 교수는 "ESG 투자 및 대출 프로그램은 SVB 붕괴의 주요 원인이 아니었다"며 "ESG 투자가 뱅크런을 촉발했다는 징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SVB가 ESG 투자에 적극적인 은행도 아니었다. 미 은행업계 전체가 ESG 투자를 늘리고 있어서다. PWC에 따르면 미국의 ESG 투자는 2026년까지 33조 9000억달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미 소비자금융 보호국(CFPB)도 지난해 시중 은행 중 59%가 ESG 경영 일환으로 여성 및 성소수자를 위한 대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 세라파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SVB 붕괴 원인은 ESG 탓으로 돌리는 건 은행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SVB는 지난해 ESG 리포트를 발간하면서 ESG 관련 프로젝트에 162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총자산인 2090억달러의 8%에 불과했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모두 2021년에 총자산의 8~14%가량을 ESG 투자에 쓸 계획을 밝힌 바 있다. SVB가 ESG 투자를 한 게 특이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개방성도 SVB 붕괴와 관련이 없다고 관측했다. 혁신을 좇는 실리콘밸리 특성에 따라 SVB는 DEI 경영을 도입했다. 고위 임원 중 여성 비율은 38%였고, 이사회에선 42%가 여성 이사였다. 경영진의 30%, 이사회의 8%가 유색인종으로 채워졌다.
특이사항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미 금융업계 경영진의 19%가 유색인종이었고, 30%가 여성이었다.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금융서비스포럼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주요 8개 은행의 이사회 구성원 104명 중 유색인종과 여성의 비중은 각각 23%, 39%로 집계됐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