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유출과 경업금지의 법률관계[LAW Inside]

입력 2023-03-15 15:00
이 기사는 03월 15일 15:0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근 유명 학원 기업이 경쟁사를 상대로 소위 ‘1타 강사’를 불법적으로 빼갔다며 370억여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해당 강사는 7년 간의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계약기간 도중 이적한 행위에 대하여 70억여 원의 손해배상금을 기업에게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해당 학원 기업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경쟁사와 그 대표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대법원의 판례 법리에 따르면, 위 학원 기업과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는 경쟁사로서는 원칙적으로 자유경쟁 하에서 사업을 할 권리가 있지만, 채권자(위 학원 기업)를 해친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법규를 위반하거나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등 위법한 행위를 하여 채권의 실현을 방해하는 등으로 채권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불법행위가 성립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대법원 2016다10827 판결). 위 사건에서 학원 기업은, 경쟁사가 해당 강사의 전속계약 내용을 잘 알면서도 먼저 접근하여 위약금 등 손실보전을 약속하고 그에 대해 임원들이 개인보증까지 서면서 이직을 권유했고, 거액의 계약금을 지급하였으며 전속계약의 구체적인 해지사유를 구상해서 치밀하게 준비해 주는 등의 위법행위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유형의 사건에서 법리가 거의 같은 일본의 주요 사례들을 보면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구체적인 요건과 배상액의 산정방법에 관해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영어회화교실을 운영하는 회사의 임원급 영업본부장이 경쟁사와 공모해 자기 휘하의 부하직원 24명과 함께 집단적으로 이적한 사건에서(그의 조직이 회사 매출의 8할을 차지하고 있었음), 도쿄지방재판소는 영업본부장 및 경쟁사의 위법행위를 인정하여 각각 손해배상을 명하였는데, 이때 영업본부장의 책임에 관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고려할 때 단순히 다른 직원들에게 이직을 권유하는 정도로는 위법행위라고 할 수 없지만, 사회적 상당성을 일탈하여 지극히 배신적인 방법으로 인력 빼가기를 했을 때에는 성실의무위반에 해당되어 위법하다. 사회적 상당성을 일탈하였는지 여부는 전직한 직원이 회사에서 점하는 지위·대우·인원수, 전직이 회사에 끼친 손해, 인력유출의 태양·방법(퇴직시기의 예고 유무, 비밀성, 계획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일반론을 제시했다. 해당 사건에서는 영업 부문의 핵심적인 임원급 인재로서 휘하 조직과 함께 일거에 전직하면 회사 운영에 중대한 지장이 초래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개별적으로 매니저들을 설득해서 비밀리에 이직을 준비하여 이직 직후에 바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고, 경쟁사와 공모 하에 위로여행을 빙자하여 세일즈맨들을 온천관광지 호텔로 이동시킨 뒤 경쟁사 임원이 나타나 장시간에 걸친 설명·설득 끝에 조직 전체가 경쟁사로 이동하여 곧바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그리고 나서 원고 회사에게 사직서를 우편으로 제출한 것과 같은 일련의 방법이 계획적이고 지극히 배신적이어서 위법하다고 보았다(도쿄지방재판소 1991. 2. 25. 판결). 다만,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는 원고 회사는 이직 이후 1년간의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청구하였으나, 재판부는 동종업계의 정착률이 높지 않고, 대체 인력을 채용할 수 있으며, 이직 시점의 경영상태가 좋지 않아 본건 유출행위가 없었더라도 직원들이 계속 재직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이유로 1개월 간의 손해만 인정하고, 나아가 해당 영업본부장이 위법행위 없이 그냥 사직하였더라도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였을 것인 점을 감안하여 다시 1개월분 중의 절반만을 최종 손해액으로 인정하였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로서, 소규모 기계부품제조 회사의 영업담당과 현장담당이 순차로 퇴사하여 몰래 동종업종의 회사를 설립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퇴직 전후로 이전 직장의 유력 거래처를 찾아가 향후 동종 사업을 할 예정이니 수주를 희망한다는 부탁을 해 실제로 수주를 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이전 회사의 매출이 감소한 사안에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전 회사의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그 신용을 훼손하는 것과 같은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본건 경업행위로 인하여 이전 회사의 자유로운 거래가 저해되었다는 사정도 없으며, 이전 회사의 사장에게 경업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의무를 당연히 지는 것도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통념상 자유경쟁의 범위를 일탈한 위법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았다(최고재판소 2010. 3. 25. 판결).

이상의 사안들과는 달리 퇴직 후에 일정기간 동안 경업(전직)금지 의무를 진다는 약정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사후적인 손해배상청구 외에도 전직 자체의 금지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그리고 자유로운 경쟁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법원은 경업금지약정의 효력 유무를 심사한다. 즉 대법원은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은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여기에서 말하는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라 함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정한 ‘영업비밀’뿐만 아니라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였더라도 당해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서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이거나 고객관계나 영업상의 신용의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는 기본적인 법리를 정립하고 있다(대법원 2009다82244 판결). 이와 같은 심사방법에 따라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이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대체로 1년 ~ 2년 사이의 경업금지의무를 인정하고 있다(수원지방법원 2022카합10163, 같은 법원 2020카합10254 각 결정; 서울고등법원 2016라21261 결정 등).

그런데 경업금지약정의 효력 유무는,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의 관점에서는 적절한 대상조치가 없는 한 쉽사리 그 구속력을 인정해서는 안 되는 반면(퇴직근로자의 이익), 기업이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개발·유지하는 영업자산의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구속력을 인정할 필요성이 크며(사용자의 이익), 한편으로 독점을 방지하고 독과점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을 억제하여 일반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경쟁정책의 관점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에서[사회적(일반소비자의) 이익], 다각적인 검토를 요한다. 특히 세 번째 사회적 이익과 관련하여, 노동법과 독점금지법의 적용관계가 문제되는데, 가령 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 2. 발표한 ‘인재와 경쟁정책에 관한 검토회 보고서’에서는, 원칙적으로 노동법이 규율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노동법이 우선적용되지만, 퇴직근로자의 비밀유지의무 및 경업금지의무에 관해서는 원칙 노동법이 우선적용되는 사용자의 행위와는 성질이 다른 행위로 평가하여 독점금지법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때 문제되는 독점금지법의 영역은 (i) 자유경쟁제한의 관점(구속조건부 거래), (ii) 불공정한 경쟁수단의 관점(불공정 거래행위), 그리고 (iii) 우월적지위 남용의 관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최근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는 아니지만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에는 해당되는 직종과 프리랜서 등 사업자적 성격을 가지면서도 일정 정도 종속적 성격도 지닌 중간적 직역이 늘어나면서 독점금지법의 역할이 이전보다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노동법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이어서 유효라고 평가되는 경업금지약정(퇴직근로자의 경업을 금지하는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고, 의무내용이 과도하지 않으며, 고액의 대상조치가 지급된 사안 등)이더라도, 퇴직근로자가 특별히 우수한 인재인 관계로 그의 경업을 금지하여 다른 사용자에 대한 근로의 제공을 억제하는 것이 상품·서비스 시장에서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현저히 제한한다고 평가되는 경우에는 독점금지법에 위배된다고 볼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노동법적 관점에서 무효라고 평가되는 경업금지의무가 독점금지법의 관점에서는 당해 근로자가 특별히 우수한 인재는 아니고 그 경업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시장에서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보한다는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경업금지약정은 보통 입사시 또는 퇴사시에 영업비밀유지서약서와 함께 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퇴사 후에 동종업계로의 전직을 계획하는 근로자가 서명을 거부하는 때가 있다. 이때 만일 회사의 사규에 경업금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면 이에 근거하여 전직금지를 요구할 수 있을까. 일본 판례 중에는 취업규칙에서 퇴직후의 경업금지의무를 정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하면서, 다만 그 유효성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해 (i) 경업금지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의 존부, (ii) 경업금지의 범위가 합리적 범위 내에 그치고 있는지 여부, (iii) 대상조치의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당 규정의 내용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평가되는 경우에는 그에 기한 사용자의 권리행사는 권리남용이라고 본 사례가 있다(오사카지방재판소 2009. 10. 23. 판결). 실무상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경업금지약정은 직원뿐만 아니라 임원과 사이에도 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도 위와 같은 유효성 심사기준을 엄밀하게 적용해야 할까. 역시 일본 판례 중에는 임원은 근로자에 비하여 비교적 대등한 관계에서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하므로 그것을 무효라고 판단함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본 사례가 있다(도쿄지방재판소 2009. 5. 19. 판결).

한편, 경업금지약정과 함께 비밀유지의무를 약정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의 비밀은 반드시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영업비밀에 해당되지 않는 경영·영업상 중요한 정보나 노하우 등 보다 넓은 범위로 설정할 수 있고, 경업(전직)을 금지하는 것보다는 온건한 수단이므로, 의무기간을 한정하지 않거나 대상조치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유효라고 판단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경업(전직)금지보다 온건한 수단이라는 점은 비밀유지의무의 성립 단계에서도 유의미할 수 있다. 일본 판례 중에는, 회사의 해외연수비용부담으로 특유의 미용기술을 최초로 익힌 뒤 해당 사업부문을 출범시켜 총괄하면서 연수생들에게 그 기술을 가르치는 책임자 역할을 하였고 연수생들로부터 자신이 직접 기안한 비밀유지서약서를 징구하기도 하였던 상급 직원에게, 정작 그 자신은 위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제출하지 않았음에도, 퇴직 후 비밀유지의무를 진다고 본 것이 있다(오사카지방재판소 2009. 3. 30. 판결).

이상 간략히 본 바와 같이 임직원이 퇴직하는 국면에서 부당하게 침해당할 수 있는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그 각각의 방법에 특유한 법리와 사례가 형성·축적되어 있다. 관련된 약정과 사규를 적정하게 갖추고 올바르게 운용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