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총탄이 박힌 벽을 고스란히 보존하며 건설한 독일 신(新)베를린 박물관, 강가의 나무 보트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영국 리버앤드로잉 박물관, 새하얀 조선의 달항아리를 연상시키는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이들 건물엔 공통점이 있다. 영국 건축의 거장 데이비드 치퍼필드(70)가 설계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다른 건축가와 달리 치퍼필드는 그를 대표하는 고유의 스타일이 없다. 그는 각 도시의 역사, 문화, 환경에 딱 맞춘 건축물을 짓는다.
영국 데본의 한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치퍼필드는 자연스럽게 건축에 관심을 가졌다. 흙, 나무, 꽃 등 자연 속에서 자란 경험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치퍼필드의 신조에 영향을 미쳤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위원회가 최근 그를 수상자로 택한 이유도 그래서다. 심사위원회는 치퍼필드를 두고 “자신의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건축가”라고 했다. 세계 각국에 있는 치퍼필드의 건축물을 보면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없는데, 그만큼 그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건축물이 놓이는 맥락을 존중했다는 뜻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