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새 사무총장에 친윤계 핵심 이철규 의원이 내정되자 여권에선 ‘사무총장 잔혹사’가 거론된다. ‘총선을 앞두고 사무총장직을 맡으면 총선에서 떨어진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공천 칼자루’를 동료 의원들에게 휘두르는 만큼 “사무총장직은 ’독이 든 성배’”라는 얘기도 나온다.
사무총장은 당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당내 요직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권한이 막강하다. 당무감사를 통해 공천 1순위 자리인 당협위원장의 교체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후보 물갈이’ 과정에서 사무총장이 칼 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차기 총선 후보를 정하는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면 당직 중 유일하게 당연직 위원으로 합류한다. 사무총장이 되면 자신의 공천권을 지키는 데 유리하다는 게 정치권 속설이다.
총선을 앞두고 ‘실세 정치인’이 사무총장직을 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철규 의원은 윤핵관 4인방 중 한명으로 친윤계 핵심 인사다. 또다른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과도 막역한 사이다. 친윤계 모임인 ‘국민공감’ 총괄간사도 맡고 있다.
하지만 그간 공천에 관여한 사무총장은 정작 본인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사무총장을 맡은 이방호 의원이 대표적이다. ‘친이(이명박)’계 실세였던 그는 당시 공천을 주도하며 ‘친박(박근혜)계’를 대거 탈락시켰다. 그 결과 박 전 대통령 지지자를 중심으로 ‘이방호 낙선 운동’이 벌어졌고 그는 18대 총선에서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패배했다.
18대 국회 당시에는 사무총장을 맡아 공천에 관여한 권영세 의원이 19대 총선에서 낙마했다. 19대 국회 때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사무총장인 황진하 전 의원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지역구를 내줬다. 20대 국회에선 사무총장을 맡은 김용태 전 의원이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를 연 뒤 21명 당협위원장 탈락 명단에 자신에 이름을 넣는 ‘셀프 청산’을 하기도 했다. 이후 21대 총선에서 진보 성향이 강한 서울 구로구에 배치돼 4선의 꿈을 접어야 했다.
같은 당 동료를 상대로 공천권을 휘두르는 게 부담이란 지적도 있다.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이 사무총장에게 원한을 갖게 된 일이 적지 않아서다. 사무총장을 맡아 공천에 관여한 한 의원은 “10년 전 공천 탈락시킨 의원이 아직도 가끔 서운하다고 얘기한다”며 “공천 준 건 기억 못해도 공천 탈락시킨 건 평생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 중진의원은 “사무총장을 맡으면 공천에 관여해 세력이 불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며 “한 명 내 사람 만들려다가 도리어 10명의 원수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번 사무총장 인선을 두고도 의원들의 우려는 적지 않다. 여권에선 벌써부터 ‘세대 교체론’에 이어 대통령실 핵심 참모와 내각 인사 30여명이 출마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측근 의원을 중심으로 차기 총선 명단을 짜고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한 재선의원은 “여의도에 지분이 없는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총선에서 최대한 ‘자기 사람’을 내보내고 싶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편에선 적절한 배치란 평가도 있다. 비윤 성향의 한 수도권 의원은 “넓은 네트워크와 친화력을 감안하면 우리 당 사무총장을 맡을 사람은 이 의원 뿐”이라고 했다. 한 초선의원은 “대야 전략이 뛰어나고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스타일이라 사무총장직을 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