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탄소 포집·이용 기술 등 친환경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2025년 말까지 경쟁국과 동일한 수준으로 주기로 했다. 최대 30%까지 투자세액을 깎아주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맞서 유럽 역내 투자를 뺏기지 않겠다고 다짐한 셈이다. 이런 EU의 의지는 올초 발효한 ‘역외 보조금 규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장 왜곡 우려가 있는 다른 나라 보조금에 대한 직권조사를 하반기부터 가능하게 한 것이다. EU는 앞서 친환경 산업 투자와 관련한 유럽국부펀드 창설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미래 핵심기술과 시장 선점을 위한 글로벌 보조금 경쟁은 전쟁 수준이다. 자국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 확대,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한 보조금 지급 및 세액공제에 미국은 물론 일본·인도·중국까지 달려들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구입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 청정기술 투자 세액공제 등으로 2030년까지 총 3690억달러(약 488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일본은 14개 친환경 분야에 총 2조엔(약 19조6000억원), 중국은 3500억위안(약 66조8000억원)을 투입한다.
한국의 선제 대응도 그만큼 시급해졌다. 하지만 현실은 느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대차가 미국에 투자하면 국내 투자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의 10배를 받는다. 반도체특별법 세액공제도 미국이 반도체 설비투자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하자, 정치권은 그제야 새 정부안(15% 세액공제)의 이달 중 처리를 약속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에 훨씬 못 미치는 대기업 연구개발 투자 세액공제율 2%는 해가 바뀌어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무역적자와 경기 침체 전망 속에서 보조금 경쟁에 뛰어들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재정적자 확대 우려를 줄이면서 보조금 지원은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미래 산업은 몇개월만 투자 결정이 늦어도 향후 주도권을 뺏길 수밖에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외투기업들이 한국에서 마음껏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세계 최고의 환경을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적극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