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40년 전통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이 여파로 미국 은행주 시가총액이 하루 새 69조원 증발했다. 이번 사태가 스타트업 업계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면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올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SVB의 파산 배경에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자리 잡고 있다. 벤처기업 열풍과 함께 미국 내 16번째 큰 은행으로 성장한 SVB는 불어난 자산과 예금을 안전 투자처로 여겨지는 미국 국채와 정부 보증 채권에 대거 넣었다. 그런데 Fed가 40여 년 만에 가장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한 데다, 불황을 겪는 테크기업의 예금 인출이 맞물려 파산으로 내몰렸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지난주 의회 청문회에 참석해 “최종 금리 수준이 기존 예상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 Fed의 연내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동시에 이달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돼서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은 한국 경제에도 큰 충격파가 된다. 미 금리 인상에 따른 강달러는 원·달러 환율 불안으로 이어져 물가와 무역수지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현재 1.25%포인트 수준인 한·미 간 금리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도 우려된다. SVB 붕괴 여파가 금융권으로 확산하면 국내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대외 여건 변화로 변동성 파도가 급격히 커질 수 있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신축적인 정책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한국은행은 환율, 자본 유출입 등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국내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의 뇌관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유연한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금융사 수익성 악화 등 금융 시스템 불안 요인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정부도 불확실성에 대비해 고삐를 좨야 한다. 수출 활력을 높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를 줄이는 동시에 환율 맷집을 키우고,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제어해 정책 여력을 확보하는 게 필수다. 규제 혁파와 노동 개혁 등을 통해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끌어올리는 데도 속도를 내야 한다.